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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가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같이 대중교통이 발달한 나라에서 다수가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는데다 길눈이 어두워 차가 있어봤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도 되도록이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그런 내가 자동차 회사를 8년이나 다녔다. 마지막에는 기획 담당 임원이었는데 역할 중 하나가 다양한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느낀 장단점을 개발부서에 피드백해 주는 것이었다. 다른 직원들은 외제차를 타고 싶어 안달했지만 나는 귀찮아서 잘 타지 않았다. 새로운 차를 탈 때마다 새로 익히는 게 귀찮았다. 창문을 연다는 것이 트렁크를 열기도 하고, 의자를 움직이기 위해 이 버튼 저 버튼을 눌러야 했다.


자동차 회사를 그만둔 후 3년간은 차 없이 생활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만족스러웠으나 한창 자라나는 애들 성화에 할 수 없이 소형차를 하나 샀다. 그런대로 잘 타고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 불편함을 느끼게 됐다. 어느 날 모 골프장 사장을 인터뷰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데 과일 한 상자를 선물로 주면서 자꾸 차를 프런트로 갖고 오라는 것이다. 극구 사양한 뒤 겨우 빠져나가는데 그 골프장은 반드시 프런트를 거쳐서 나가야 하는 구조였다. 사장은 그때까지 안 들어가고 밖에 서 있었다. 할 수 없이 프런트 쪽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사장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심지어 당시 내 차는 뒷부분이 콱 찌그러져 있었다. 차를 몰고 나오는데 뒷골이 당겼다. 그분이 이런 생각을 할 것 같았다. “저래서 그렇게 차를 안 갖고 오려고 했구먼…”


이런 일은 기업 강의 때도 자주 일어났다. 강의 후 주차장까지 마중 나오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그들은 내 차를 보고 당황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사실 제가 차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큰 차가 필요 없고 이 차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작은 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니 오해하지 마세요.”라고 변명할 수도 없었다.


뭐든 자기 처지에 맞게 갖는 게 좋다. 차도 그렇다. 내게 차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지만 당시 내 처지와는 어울리지 않았고 그 때문에 늘 마음이 불편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 신경이 쓰였다.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좋다. 어울리지 않는 차로 인해 쓸데없이 궁금증을 일으키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얼마 뒤에 차를 바꿨다. 내게 어울리는 검은 중형 차였다. 확실히 작은 차보다는 조용하고 안락하며 차 모는 맛이 났다. 무엇보다 차에 대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 가장 좋았다.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한,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나는 중형 차를 샀지만 사실 사람들의 기대를 산 것이다. 돈을 주고 마음의 평화를 산 것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