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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은 최고의 MBA다 

 

김종명 코칭경영원 파트너코치

 

 

 

향을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 ‘훈습’ 효과 때문이다. 연기를 쐬고 습기에 젖어드는 것처럼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을 훈습이라고 한다. 이를 일컬어 ‘물이 들었다’고 한다. 절에서는 출가하고 나서 사찰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을 ‘중물이 들었다’고 한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직장에서 근무하든지 그곳의 물이 들게 되어 있다. 여러 기업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똑같은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이라도 어느 기업에서 근무하는지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지거나 다른 수준의 지식을 가지는 것을 목격한다.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직원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직장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학교에서 매일 배움이 일어나듯 직장에서도 매일 배움이 일어나고 있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해라’는 말을 들으면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기의견을 말하면 혼난다는 것을 배운다. ‘그것도 제대로 몰라?’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듣는 직원들은, 질문하면 혼난다는 것을 배운다. 리더의 말과 행동은 그대로 조직의 문화가 되어 직원들에게 ‘훈습’된다.

‘어른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다. 이들도 직장은 교육하는 곳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직장인은 성인인데, 자기 스스로 공부해야지 누가 가르쳐 준다고 되는 게 아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에 절반만 동의한다. ‘어른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라, 쉽게 변하지 않는다’라고 고쳐 말해야 한다. 이들은 ‘일하기도 바쁜데 한가하게 직원들을 교육할 시간이 없다’거나 ‘직원들을 외부로 교육 보낼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한다. 이들은 ‘교육의 본질’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이 있다.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과 나눈 대화가 교육으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이 말을 ‘일을 통한 교육’이라고 바꾸어 말해보자. 일을 하면서 일상적으로 나누는 대화가 직원들의 교육으로 직결된다는 뜻이다.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

두산그룹은 직원들이 일을 통해서 가장 잘 배울 수 있다고 믿는다. ‘일을 통한 육성’이 두산그룹의 중요한 가치다. 그 방법의 하나로, 두산그룹에서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TEA 타임’을 가진다. ‘Think, Explain, Ask’의 약자다. ‘Think’는 그 일을 하는 목적(Why)에 대해 리더가 먼저 고민한다는 뜻이다. ‘Explain’은 그 일의 목적에 대해 직원들에게 설명해 준다는 뜻이고, ‘Ask’는 그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How, What)에 대해 물어보고(Question), 요구하는(Demand) 것이다. 이러한 TEA 타임을 통해 직원들을 육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실제로, 무작정 일에 덤벼드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일을 하면, 과정에서 부딪치게 되는 웬만한 문제는 직원들 스스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이를 등산에 대해 적용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등산의 목적이 정상을 정복하고 호연지기를 느끼는 것인지, 건강을 위한 것인지, 그냥 사교 모임인지에 따라 등산의 목적지가 달라지고 방법도 달라진다. 호연지기를 위한 등산이라면 반드시 정상까지 가야할 것이고,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체력이 되는 데까지 갈 것이다. 사교가 목적이라면 계곡에서 멈추어도 될 것이다. 등산을 하는 방법도 걸어갈 것인지, 뛰어 갈 것인지, 케이블카를 타고 갈 것인지, 차를 타고 갈 것인지 목적에 따라서 달라진다.

얼마 전에 코칭을 했던 팀장은 자신을 ‘에스프레소 코치’라고 소개했다. 카푸치노 커피, 마끼야또, 카페라떼, 커페모카 등 블렌디드 커피에는 에스프레소가 반드시 들어간다. 에스프레소 없이는 블렌디드 커피를 만들 수 없다. 블렌디드 커피에 에스프레소가 꼭 필요한 것처럼, 자신의 직원들이 언제 어디서나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육성하는 것이 에스프레소 코치의 사명이라고 했다. 그러려면 직원들의 장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장점은 더욱 강화시켜주고 약점은 보완해 줘야 한다고 했다. 직장은 학교가 아니라거나, 바빠서 가르칠 여유가 없다거나, 교육을 보낼 시간이 없다는 생각으로 일하는 사람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처럼 일을 하면서 동시에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면 직장은 최고의 MBA가 될 수 있다.

일할 때마다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고 성장

리더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직장은 배움이 단절된 공간이 되기도 하고, 매 순간 학습이 일어나는 최고의 MBA가 될 수도 있다. 어떤 일을 끝냈을 때 ‘이번 일을 하느라 수고 했다’는 식의 무의미한 칭찬을 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 순간을 소중한 배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일을 통한 육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떤 일을 마무리 할 때도 배움의 순간이 될 수 있다. 어떤 일을 끝냈을 때 ‘마무리 질문’을 통해 직원들을 육성하는 것이다. 마무리 질문이란, 어떤 일을 마무리 하면서 ‘이 일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Learning), 이 일을 하면서 어떤 성찰이 있었는지(Reflection), 앞으로 어떻게 달리 해보겠는지(Action plan)’를 묻는 것이다.

마무리 질문을 활용해 직원들의 배움을 이끌어낸 한 임원의 사례를 보자. 매 분기마다 경제동향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3개월 후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보고서를 매번 작성해야 하는 게 팀원들에겐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고 한다. 직원들은 조금이라도 더 내용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마감을 늦추었다. 이 임원은 ‘마무리 질문’에 대해 알고 난 후에, 보고서 작성을 끝낸 팀원들에게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해 토론하게 했다. 직원들은 스스로 문제점과 개선책을 찾아냈다. 그 후로 직원들은 스트레스가 훨씬 줄어들었고 마감 기한도 앞당길 수 있었다고 했다. 직원들이 스스로 생각하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 가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나도 강의를 마칠 때 마무리 질문을 즐겨 활용한다. 이 질문을 통해 수강생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하면서 한 단계 더 높은 학습을 경험한다.

코칭을 하면서 ‘당신은 어떤 상사를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자신을 믿어주고, 다소 버거운 일을 맡기면서 기다려주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슬그머니 와서 도와주는 상사를 좋아한다’ ‘항상 생각하게 만들고, 일하는 방법과 노하우를 전수해 주는 상사를 좋아한다’.

이와 달리 상사는 ‘생각하면서 일하는 직원’을 좋아한다. 아무 생각 없이 일하는 게 아니라 일의 목적과 방법, 효율과 효과 등을 생각하면서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배운다는 자세로 일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런 사람은 일할 때마다 성장한다. 이런 조직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 배운다는 자세로 일하는 직원들과 일을 통해 가르친다는 자세로 일하는 상사가 모여 있는 조직을 상상해보라. 이런 조직은 일할 때마다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고 지속적으로 성장한다. 이런 직장이 바로 최고의 MBA다.

​원문: 이코노미스트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243&aid=0000004209&sid1=001&lfrom=kaka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