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와튼 스쿨의 마리우스 구엔젤 교수는 2021년 3월 연구 논문에서 1,605명의 미국 대기업 및 상장기업 CEO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CEO의 스트레스가 늘어날 때 수명은 약 2년 정도 단축되었으며 불경기에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약 1.2년가량 노화가 빨리 진행되었다고 발표했다. 연구에서 구엔젤 교수는 스트레스가 기업 임원들의 장기적 건강에 미치는 효과가 우리 생각보다 훨씬 크며 사회적, 개인적 비용 역시 엄청나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스트레스가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막연히 알고 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단축 수명 기간과 노화 연수까지 발표된 것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스트레스 하면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나라다. 몇 년 전 데이터지만 2014년 연세대 윤진하 교수가 발표한 직업별 자살률 추이에 따르면, 우리나라 화이트칼라 남성 관리자들의 10만 명당 자살자 수가 2007년 3.7명에서 2012년 44.6명으로 12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끔 언론에서 어느 기업 임원이 업무 압박감에 시달려서 자살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놀랐었는데, 통계는 이를 증명하고 있다.


기업에서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것은 소위 ‘별’을 따는 것이요, 길게는 20여 년 동안 열심히 일한 보상을 받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렇지만 임원 승진의 영광과 더불어 따라오는 것이 스트레스다. OECD 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기업 임원들 스트레스 역시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높다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런데 임원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개인, 기업 그리고 사회적 대책은 어떠한가?


임원 비즈니스 코치로 일하면서 임원들과 개인적인 깊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많다. 그중 어떤 분들은 업무 중압감에 시달려서 정신과 약을 먹으며 스트레스를 버티어 내고 있다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 안타깝게 들은 적이 있다. 나도 과거 대표이사로 근무할 때 M&A를 하면서 수십 명을 해고해야 되는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다. 해당 임직원들에 대한 인식 공격성 정보들이 전달되고, 여러 경로를 통한 구명 요청에 대한 압박으로 일주일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정신과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이렇게 임원 역할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는 간단치 않으며, 따라서 스트레스 관리가 비즈니스 코칭 주제로 자주 등장한다.


임원들은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자리에 있다. 임원들의 정신 건강은 사실 조직의 정신 건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기분에 따라 조직 분위기가 싸~ 하게 돌아가서 직원들 마음을 얼어붙게도 하고, 봄 햇살처럼 따스하고 밝은 에너지를 조직에 전염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기업에서는 직원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 상담 심리 등 여러 지원을 하고 있는 편이지만, 아직 임원들을 위해서는 그렇지 못하다. 아니, 임원들이 활용할 수 있더라도 임원 스스로가 주위 평판 때문에 기업이 제공하는 제도를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혹여라도 다음 인사에서 이런 연유로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이제 임원의 정신 건강을 위해 회사는 좀 더 관심과 투자를 해야 할 것 같다. 정신 건강 역시 다른 건강 이슈들처럼 조기에 파악할수록 그 대처가 쉽다. 개인적 차원에서 임원들은 자신의 정신 건강에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임원 직급까지 올라온 사람들은 대개 어느 정도 스트레스 내성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비를 오래 맞으면 옷이 흠뻑 젖을 수밖에 없다. 현재 내가 정신적으로 취약함을 느낀다고 해서, 곧 내가 나약하다는 증거는 아니다. 오히려 이 사실을 부정하고 회피할 때 더 큰 부작용을 겪게 된다. 현실을 용기 있게 직면하고 이에 적절하게 대처할 때 정신적 회복력을 증진시킬 수 있다.


조직 차원에서도 임원들의 정신 건강을 개인에게만 맡길 것이 아니고 회사 차원에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노조의 울타리가 없는 임원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보다는, 회사의 가장 중요한 인적 자산으로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가야 할 임원들의 정신 건강 유지를 위하여 충분한 휴식과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soh5813@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