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 마지막 날, 오랜만에 만난 뉴욕 변호사 시절 친구가 롱비치의 허름한 동네 술집으로 이끌었습니다. 온몸에 문신, 귀걸이, 코걸이 한 친구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우리에게 옆자리의 갱단 멤버 같은 친구가 더롹 같은 말투로 말을 걸어 왔습니다. "I love your glasses man. I love your suit man." 저는 고마움의 표시로 피에르란 이름의 이 친구에게 맥주를 한 병 샀습니다. 급 친해진 그가 저희들을 자기 친구 집에 초대했습니다. 피곤에 지친 저는 빨리 호텔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취기가 오른 친구의 닦달에 그들을 따라 나왔습니다. 롱비치의 뒷골목, 경찰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 울리고, 작년에 야구하다 다친 발목은 술김에도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친구에게 욕을 한껏 퍼부으며 헤매다 새벽 두 시에 겨우 도착한 곳은 컨테이너 하우스였습니다. 바에 있던 열 명 정도가 함께 누구의 집인지도 모르는 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새벽의 적막을 깨는 쾅쾅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아담한 체구의 여자 분이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무리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더니 우리를 둘러 봅니다. 어이 없는 표정을 잠깐 짓더니 "Come on in!" 하며 웃으며 맞아 줍니다. 나중에 들어 보니 그 곳은 바에 있던 한 친구의 사촌 누나네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날 처음 만난 사이였고요. 새벽 두 시에 처음 만난 남자의 친구의 사촌누나네에서 열린 파티에 친구와 나는 서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저 여자 분은 이런 상황을 웃으며 넘길 수 있을까? 만약에 "남의 집에 연락도 없이 새벽에 쳐들어오는 것은 무례하고 나쁜 짓이라" 고 사촌을 면박 줘서 내쫓았다면, 아니면 마지 못해 집으로 들였지만 내내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모두가 멋쩍어하며 얼굴을 붉히고 흩어졌을 겁니다. 하지만 이 여성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얼간이 같은 사촌이 낯선 사람들을 몰고 온 일은 이미 벌어졌습니다. 그 일의 잘잘못을 따지기 보다 이미 벌어진 상황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유연하게 자신의 삶으로 초대했습니다. "Come on in~!" 우리 모두는 LA의 그루비한 파티음악을 들으며 파티를 즐겼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고마운지 얘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삶에 대해, 얼간이 사촌에 대해, 캘리포니아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새벽이 깊어질 무렵 저는 우버를 부른 후 먼저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왔습니다. 얼간이 사촌이 꼭 배웅을 해 주겠다고 따라 나왔습니다. 그는 제가 안전하게 우버차에 탈 때까지 저를 지켜 봤습니다. 그 날 저는 인생에 대해, 행복의 기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연처럼 일어나는 일을 기꺼이 맞아 들이는 것. 이래야 내가 행복하다 라는 생각을 놓아 버리고 유연하게 삶을 수용하는 것. 그런 것이 우리 삶을 더 빛나게 만드는 행복의 기술이 기술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openroadtalent@gmail.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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