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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 천사가 왔다. 말로만 듣던 천사가 온 것이다. 화영이가 첫 애를 난 것이다. 아내가 딸을 낳는 것과 내 딸이 자기 자식을 낳는 것은 참 다르다. 솔직이 아내가 임신을 했을 때는 그렇게까지 측은지심이 없었다. 아내는 만삭의 몸으로도 매일 가게에 나가 일을 했다. 삼시세끼를 다 준비하면서 일을 했다. 난 공부한다는 핑계로 아내가 돌아올 때까지 애를 보는 게 하는 일의 전부였다. 아내는 임신 중에 먹고 싶은 것이 많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구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배를 참 먹고 싶어했다. 미국 배는 맛이 없다. 거기에 비하면 한국 배는 물이 줄줄 흐르고 먹음직스러웠다. 동양마켓에서 팔고 있었는데 너무 비쌌다. 유학생 수준으로 사기는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걸 사주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리 비싸도 두 눈 딱 감고 사야 했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이다. 지금도 기회만 되면 아내는 배 얘기를 꺼낸다. 난 할 말이 없다. 게다가 그런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골프를 치러 다녔으니 참 나도 철이 없긴 어지간히 없었다.

그 동안은 애를 갖고 애를 낳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별로 어렵고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딸이 애를 갖고 낳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니 그 생각은 틀렸다. 절대 그렇지 않다. 애를 갖고 낳은 건 정말 신성한 일이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회란 생각이다. 딸은 애를 갖기 위한 몸을 만들었다. 음식도 가려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나쁜 생각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진 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입덧 때문에 아무거나 먹을 수도 없었다. 입덧기간에는 특히 몸을 조심했다. 본인도 힘들지만 주변에 있는 우리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덧기간이 지난 후에는 잘 먹었다. 딸은 임신 후 다니던 회사를 휴직하고 매일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런 딸을 위해 아내는 정말 헌신을 했다. 매일 딸이 먹고 싶다는 걸 해 주고, 딸과 같이 병원을 다니고 운동을 하고, 애를 위해 필요한 것을 사러 다녔다. 원래도 남에게 잘 하는 아내지만 딸에게 하는 걸 보니 정말 헌신적이다. 거기에 비하면 아버지인 나는 허당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음으로는 딸을 위하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만삭이 가까워지면서 난 점점 딸이 애처로웠다. 배가 너무 나와 몸을 어떻게 할 수 없어했다. 눕기도 불편하고 옆으로도 몸을 어쩌지 못했다. 그래도 산모가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하니 아침마다 헬스장에서 걷고 저녁은 운동장을 돌았다.

드디어 출산일이라 아내와 딸이 병원엘 갔고 난 좀 늦게 갔다. 딸에게 진통이 오고 있었다. 애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다. 내가 갔는데도 반응조차 못한다. 무통주사를 놓았다는데도 진통지수가 높았다 낮았다를 반복한다. 딸의 손을 잡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옆에서 말을 거는데 답도 못했다. 얼마 후 의사선생님이 수술을 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애기가 너무 크고 위치가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난 속으로 진통을 더 이상 하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대기실에서 얼마를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딸 이름을 부른다. 가보니 애가 태어나 신생아실로 이동 중인데 보라는 것이다. 근데 애가 그렇게 또렷할 수가 없다. 신생아답지 않게 태열 같은 것도 없고 피부도 쭈글쭈글 하지 않고 깨끗하다. 애기는 눈을 뜨려고 애를 쓴다. 한쪽 눈은 떠지고 다른 눈은 뜨질 못한다. “땡큐 가드,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참으로 감격스런 순간이다. 목에서 무언가가 올라왔다. 내 딸이 엄마가 됐고 난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근데 난 제주에 강의가 있어 더 이상 애를 보지 못하고 바로 병원을 떠났다. 계속 애기의 잔상이 남아 있었다. 아내가 보내준 애기 사진을 보고 또 봤다.

다음 날 제주강의를 마치고 바로 병원으로 직행했다. 딸은 밝게 웃고 있었다. 진통도 끝나고 애기도 나와 평화가 찾아온 것이다. 잠시 후 간호사가 수유를 위해 애기를 데리고 들어왔다. 애기는 젖도 참 열성적으로 빤다. 아직 젖도 나오지 않을 텐데 뭘 저렇게 빨까? 배가 고픈지 우는데 우유를 주자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아내와 사위도 애를 안아보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신생아라 안기도 조심스럽다. 애기를 안는 순간 정말 감격이다. 30년전 화영이를 클리블랜드 공항에서 처음 만날 때가 생각났다. 당시 아내는 향수병 때문에 한국에 가서 애를 낳고 한달 반쯤 지나 미국으로 다시 왔고 난 딸을 거기서 처음으로 만났다. 그때 눈을 반짝 뜨고 나를 유심히 봤다. 그때의 느낌도 특별했는데 손자를 볼 때의 느낌은 달랐다. 그때는 “얘가 내 딸이구나, 드디어 내가 아버지가 되는구나, 가족이 늘어났으니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구나”같은 생각이 들었다. 기뻤지만 책임감으로 어깨가 무거워진 그런 기분이다. 이번에는 순수하게 기뻤다. 책임감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기쁨 그 자체이다. 우리 집에 천사가 왔다. 난 앞으로 천사와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천사와 친한 친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천사의 순수함을 배우도록 노력할 것이다. 참으로 기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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