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노인 기사가 운전하고 있었다. 워낙 연로해 보이고 운전도 불안해서 창문 옆에 붙은 손잡이를 꼭 잡은 채 나이를 물어봤다. 일흔이 넘었다고 한다. 돈보다 심심하고 자꾸만 몸이 아파서 운전대를 잡았다고 했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한국인들은 여가를 즐길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 평생 허리가 휘도록 일하더니, 퇴직 후에 더 힘든 일을 찾아서 사서 고생을 하지 않는가? 이와 대비되어 은퇴한 후 여유롭게 여생을 즐기는 유럽 근로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항상 떠올랐다. 그러다가 한 심리학 연구를 보고 생각을 다르게 하게 됐다.
심리학자들이 나이가 아주 많고 건강이 좋지 않은 노인들을 수용한 양로원을 방문했다. 방마다 화초를 나눠주고 간병인들에게 물을 주게 했다. 그런데 4층에서는 간병인이 아니라 노인들이 직접 물을 주도록 시켰다. 노인들이 식물의 종류와 화분 위치를 직접 정하게 하고 때가 되면 알아서 물을 주도록 만들었다. 18개월 뒤 양로원에 다시 찾아갈 때, 심리학자들은 4층의 화초들이 많이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노인들이 모두 기력이 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8개월의 변화를 조사하며 학자들은 크게 놀랐다. 다른 층보다 4층에 있는 노인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게다가 훨씬 건강했고 밝고 활기가 넘쳤다. 당연히 화초도 잘 컸다. 움직이기도 힘든 연로한 노인들이 직접 물을 떠와서 화초를 가꾸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노동과 애착이 노인들에게 건강을 되돌려 주었다. 노인 기사의 말이 옳았던 것이다.
토드 부크홀츠는 [러쉬]라는 책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고 스트레스로 가득 찬 삶을 사는 이유가 성공만을 위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경쟁 자체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독자를 오스트리아의 한 마을로 안내한다.
마리엔탈은 동네 전체가 섬유와 약재의 원료가 되는 아마 산업으로 유지되어 왔다. 아마를 빻는 곳과 방직공장이 마을 사람들을 먹여 살렸다. 1930년대 이후 대체 섬유기술의 발달로 아마에 대한 수요가 대폭 감소하자, 백 년 이상 가동해왔던 방직공장들이 문을 닫기 시작했다. 방직공장이 곧 마을이었던 마리엔탈은 곧 파산했다. 생기가 넘치던 마을은 주민의 4분의 3이 정부 보조로 살게 되면서 활기를 잃어갔다. 누군가 일하는 모습을 공무원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보조금을 즉시 빼앗겼다. 어떤 남자는 길거리에서 하모니카로 노래 부른 대가로 동전 몇 푼을 받았다고 정부 보조가 끊기기도 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됐다. 일이 없어지자 주민들은 무기력해져 갔다. 대부분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마치 영혼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여가 시간이 무한정 늘어났지만 사람들은 여가 활동을 하지 않았다. 도서관엔 책이 있고 사람들에겐 시간이 많았지만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제 기능을 하는 유일한 집단은 장의사 무리였다. 예나 지금이나 장례는 필요했으니까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자들이 남자보다 상대적으로 기운이 있어 보였다는 점이다. 길을 건널 때 여자보다 남자가 훨씬 더 걸음이 늦고 더 자주 멈춰 섰던 것이다. 부인들은 여전히 가사노동으로 바빴기 때문이다. 부인들이 음식을 차리면 남편들은 뒤늦게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했다. 여자들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도 더 피곤했다.
심리학자들은 마리엔탈 사람들의 무기력을 이렇게 설명한다. 두 가지 요인이 더해져서 뇌 기능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첫째, 일을 하면 지속적으로 정신의 회로를 점검할 수 있으나, 일에서 손을 떼면 뇌 안의 회로도 느슨해진다. 둘째, 은퇴해서 일을 놓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도태될 준비를 하는 사람은 성가시게 책을 읽고 새로 나온 컴퓨터나 최신 기계의 사용법을 익히려 들지 않는다.
이처럼 일을 하지 않으면 뇌 기능이 저하되고 무기력해진다. 반대로 일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가 활성화된다. 최근 들어 과도한 업무와 경쟁이 행복을 앗아간다고 말하는 행복전도사들이 많아졌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경쟁과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히려 우리 몸이 도파민, 아드레날린, 테스토스테론, 에스트로겐, 오피오이드 등 신경호르몬을 만들어내고 짜릿함이나 행복감을 더 느끼게 된다. 그래서 부자들이 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다. 능력 있는 고소득자들이 더 오래 일하는 이유나 자기 업체를 일구어 성공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평생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은 돈을 가진 부자가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은 일할수록 행복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 스트레스다. 그러나 경쟁은 그것을 ‘생각’할 때 스트레스지만, 막상 경쟁에 들어갔을 때는 우리 몸을 활성화시킨다. 마치 100미터 달리기 출발 전에 가슴이 콩닥거리지만 막상 출발하고 나면 뜀박질에 몰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왕 피할 수 없는 경쟁이라면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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