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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송년회를 11월에 합니다.” 한 임원의 말이다. 인사 시즌이 점점 당겨지면서 연말에 하면 떠난 자리가 허전하고 어색한 자리가 되어서다. 11월이 되면 각 기업은 인사 소식으로 분주하다. 인사하면 승진만 생각하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퇴직과 한 세트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무대 위의 조명이 켜질 때 무대 아래의 그림자도 길어진다. 전통 세대의 퇴직은 말 그대로 ‘은퇴’,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였다. MZ 세대는 잦은 이직과 전환으로 일찍부터 퇴사에 익숙하다. 그러나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는 낀 세대로서 퇴직의 의미가 다르다. 이들 대부분은 회사에서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일했고 일로 자신을 증명해 왔다. 은퇴 이후 재정 계획보다 더 큰 공백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일터’보다 ‘일 없는 나’의 낯섦이다. 그 낯선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테레사 애머빌(Teresa Amabile)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의 말에 따르면 “성공적인 퇴직의 핵심은 일의 종료가 아니라 삶의 구조를 다시 짜는 것이다”(『후회 없는 퇴직』, HBR, 2024년 11-12월호). 그는 10년에 걸친 종단 연구와 116명의 리더 인터뷰를 통해 은퇴의 본질은 경제적 은퇴가 아니라 심리적 재구성이라고 강조한다. 일 중심의 구조를 ‘나 중심의 구조’로 전환하지 못하면 존재감은 줄어든다. 재정이 확보되어도 마찬가지다. 퇴직을 퇴장이 아닌 새 무대 입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선 4가지 습관의 기둥을 튼튼히 받쳐야 한다. 첫째, 의미 추구 루틴이 필요하다. 퇴직 공허감은 돈보다 의미의 결핍에서 온다. 일로부터 얻던 보람이 사라지면, 하루는 놀라울 만큼 길고 느리다. 어떤 리더는 은퇴 후 매주 LinkedIn에 한 꼭지씩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주제는 복잡하지 않았다. 일터에서 배운 교훈,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문장, 세상과 자신을 연결하는 짧은 단상들이었다. 개인 브랜딩이 절로 됐고 2막의 새 커리어로도 연결이 됐다. 나는 어떤 일에서 보람과 성취를 느끼는가? 둘째, 관계 재구성의 습관이다. 은퇴는 관계의 단절도 재탕도 아닌 재편성이다. 직장에서의 인맥은 직함이 지탱했지만, 퇴직 후 관계는 서로의 진심이 지탱한다. 하루 10분이라도 사람들과 웃고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자. “지가 누구 덕에 컸는데” 하며 섭섭해하기보다 새로운 관계를 찾아보자. 과거 인연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과도 만나야 자극과 에너지를 얻는다. 지금 내 곁에서 에너지를 주는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일상의 구조를 세우는 습관이다. 퇴직 후 많은 이들이 “아침에 출근할 곳이 없는 게 공허하다”라고 말한다. 갈 곳이 없어 허전하다면 매일 갈 곳을 만들자. 하루의 구조가 없으면 생각은 방황한다. 자신에게 맞는 리듬과 구조를 설계하자. 아침에 공공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점심엔 지인과 식사하고, 오후엔 운동과 봉사를 하는 등 무엇이라도 좋다. 루틴은 규율을 넘어 자존감의 프레임이다. ‘내가 하루를 통제하고 있다’라는 감각은 “나 살아있네”라는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나는 하루 루틴을 어떻게 설계하고 싶은가? 넷째, 가치의 리밸런싱 습관이다. 지금 나의 의미 추구 활동, 관계, 삶의 구조는 내 가치관-목적과 일치하는가? 종종 리밸런싱 해보자. 오랫동안 ‘회사 사람’으로 살아왔다면, 이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써보는 것이다.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 퇴직 후 2막 경영은 습관의 이상의 네 가지 기둥을 세우는데 달려 있다. 매일의 의미와 보람, 따뜻한 관계, 나 다운 루틴, 그리고 가치 리밸런싱—이제는 나만의 탄탄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배움 공동체가 있으면 도움이 된다. 코칭경영원의 이그제큐티브 커리어 살롱(ECS) 참가자들은 "비슷한 처지의 다양한 업계분들과 함께 고민하며 새로운 루틴을 찾아나갈 생각을 하니 삶의 활력이 다시 생기는 느낌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자, 우리가 명함이 없지 ‘가오’까지 없겠는가. 그간 대세를 따르느라 흔들리고 때론 허세도 부려온 당신, 2막부터는 진짜 내 삶의 실세(實勢)가 되어 기세 있게 살아보자. 인생 2막은 기세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blizzard88@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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