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이런저런 이유로 취직을 많이 시켜주는 편이다. 한 번은 대학 졸업 후 1년 이상 노는 친구를 괜찮은 기업에 취직시켰다. 우연히 그 친구의 관심사와 회사가 일치됐기 때문이다. 그리곤 잊고 있었다. 그런데 잊을만하면 그 친구는 내게 문자를 보내거나 이메일을 보내왔다. 내용은 이랬다. “이런 시기에 취직을 시켜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이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식사를 한 번 모시든지 어떻게 하겠습니다.” 나는 이렇게 답을 했다. “괜찮다. 내가 한 일이라곤 소개를 시킨 것밖에 없다. 다 자네가 능력이 되니까 된 것 아니겠나? 마음 쓰지 말아라. 자네 마음만 받겠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그리고 자꾸 연락을 해온다. 내용은 매번 같았다.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은근히 짜증이 났다. 속으로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이 친구 바보 아니야? 그렇게 부담이 되면 뭔가 간단한 선물이라도 하면 되지 뭘 그렇게 고민해. 맘만 먹으면 얼마나 선물할게 많아. 요즘은 핸드폰으로 커피도, 노래도 보낼 수 있는데.’ 하지만 그런 얘기를 어떻게 내 입으로 하겠는가? 알아서 하면 좋고 모르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다 보면 그런 사소한 것이 맘에 걸린다. 불편은 한데 차마 얘기할 수 없는 것들이다. 가만히 있자니 내 맘이 불편하고, 그렇다고 얘기하기는 정말 어렵고…. 오랫동안 연락이 없던 사람이 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본인도 직접 하고, 직원을 통해서도 하고, 내가 전화를 안 받으니 문자도 남기고 음성 메시지까지 남겼다. 속으로 조금 황당했다. 내가 바보도 아닌데 문자를 남겼으면 그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뭘 이렇게까지 수선을 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갈만한 사람이기 때문에 직접 문상을 하고 부조도 적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감감무소식이다. 고맙다는 말도 잘 치렀다는 연락도 없다.


그러다 일 년 만에 다른 장소에서 다른 일로 만났다. 때마침 내게 프로젝트가 왔는데 여건상 하기가 어려워 그분에게 얘기를 했다. 자신이 담당자를 만나보겠다며 호들갑을 떤다. 나는 그분의 속성을 알기 때문에 일이 진행되든 그렇지 않든 진행 상황을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혹시나 했던 일은 역시나로 끝났다. 아무 연락이 없다. 나는 속으로 그 분과의 인연은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사람은 일이 있으면 난리를 치다가 그 일이 끝나면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하는 사람의 전형이다. 하지만 뚜렷이 폐를 끼친 것은 없기 때문에 정말 얘기하기 곤란하다. 속상한 것을 속으로 삭히는 수밖에 없다.


큰 사건은 아니지만 이런 자잘한 것들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잊고 있으면 되지만 잘 잊히질 않는다. 대부분 내 기대와 다르기 때문에 불편하다. 문제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기대이다. 직원들에게 밥을 열심히 사는 편이지만 직원들이 밥 사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형편을 뻔히 알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밥을 먹고 진심으로 이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잡은 저녁 약속시간에 몇 번 바람을 맞았다. 식사시간 바로 전 이러저러한 이유로 올 수 없다는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직원이 많은 것도 아닌데 그중 한 명이 빠지면 분위기는 썰렁하다. 몇 시간 전에 다른 직원 편에 사정이 있어 불참한다는 얘기를 듣자 황당했다. 이해하기도 어려웠다. 무슨 일이길래 오래전에 잡은 약속을 당일 몇 시간 전에 일방적으로 취소를 할 수 있는가? 미리 얘기를 했으면 약속을 바꿀 것 아닌가? 몇 번 그런 일을 겪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괜한 짓을 한 거야. 직원들은 고마워하지도 않는데 쓸데없이 저녁 산다고 바쁜 직원들 불러내 직원들을 불편하게 한 거야. 이제 그런 짓 하지 말자. 제발 나이에 맞게 쿨하게 살자.”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다. 그래서 잘 사는 방법은 베풀되 아무 기대를 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최악은 많은 기대를 하면서 번번이 실망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 사실을 잘 안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대하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렵다. 기대를 하지 않으려 해도 본능적으로 기대를 하고 실망을 한다. 얼마나 더 공을 닦아야 그런 경지가 될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