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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사과 한 박스를 보내왔습니다. 자기 집 과수원에서 딴 사과라고 말입니다. 기대를 하고 박스를 열었더니 오 마이 갓, 첫눈에 봐도 참 맛없는 사과처럼 보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먹어보니 맛이 너무 형편없었습니다. 난감했습니다. 이 많은 사과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말입니다. 맛있는 사과가 지천에 널려 있는 때에는 사과 먹는 재미가 쏠쏠한데 이걸 어쩌지 하는 생각에 슬며시 짜증이 났습니다.


“여보, 나 이 사과 먹기 싫어!”


“아니, 안 먹으면 어떻게 할 것인데? 그래도 선물로 온 것이니까 그냥 먹어요.”


저는 사과 마니아입니다. 아니, 마니아를 넘어 광적으로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1년 열두 달 사과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지요. 벌써 50년 넘게 매일 사과 한 알 씩 빠지지 않고 먹어왔으니 그렇게 얘기할 만합니다. 그래서 사과는 먼발치에서 봐도 과육의 질이나 당도, 향까지 귀신같이 알아맞힙니다.


스타트업 CEO 50여 명 앞에서 제가 발간한 책에 대한 북 콘서트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인가요? 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때 저는 청중들에게 이런 첫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일어서서 바로 옆에 있는 사람과 서로 이 질문을 하고 답하도록 했습니다. CEO들이 왁자지껄 서로 즐겁게 묻고 답하였습니다. 제가 드린 답은 이렇습니다.


“저는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언제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꿈, 버킷리스트, 취미생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저는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 감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바로 ‘하기 싫은 일’은 안 하는 것입니다. 은퇴하고 한참 지난 이제야 저는 가기 싫은 모임에 안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 모임에 만나기 싫은 사람이 참석을 한다면, 이제는 제 의사를 명확히 전달합니다. 만나기 싫은 그 한사람 때문에 아까운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은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맛없는 사과를 먹기 싫은데 억지로 먹는 것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뿐더러, 그 시간이 인생에서 낭비되는 것 같아 저는 참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은 맛없는 과일을 선물받으시면 어떻게 하시나요?


며칠 전 그 맛없는 부사가 싫증이 나서, 온라인 사이트에서 무농약 유기농 감귤을 한 박스 주문했습니다. 감귤이 도착하자 집사람이 또 잔소리를 합니다. 아니, 아직 사과도 남았는데 왜 귤을 주문했느냐고요. 한쪽 귀로 듣는 둥 마는 둥 못생긴 유기농 귤을 하나 까먹었습니다. 그런데… 왜 귤이 이 모양입니까. 선전에 나온 그 새콤달콤한 귤은 어디 가고 흑흑… 싱겁고 당도도 낮은 최하품의 귤입니다. 나 참, 이 일을 어찌할꼬? 지금 있는 사과처럼 외면할 수도 없고. 왜 인생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도록 강요하는 것이지? 이러고도 인생의 황금기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살짝 고민이 됐습니다.


저는 그날 인생의 황금기를 위해 거사(?)를 치렀습니다. 제가 귤껍질을 까고 집사람은 착즙기로 귤을 내리며 한 20~30분 중노동을 한 덕에 귤 주스가 온 주방을 채웠습니다. 귤은 맛없지만 귤 주스는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귤을 까면서 이제 하기 싫은 일은 안 하기로 더욱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렇다면 사과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그건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kdaehee@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