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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아버지가 전립선암을 진단받으셨다. 평생 건강하게 오래 사시리라 생각했던 아버지가 암이라고 하니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는 얼마나 더 당황스러우셨겠느냐마는 내 마음도 흔들렸다. 아직 모든 검사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라서 한 달 후에 알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아버지는 가족 채팅방에 암은 치료 안 해도 된다, 자연치유가 정답이라는 등의 동영상을 계속 공유하셨다. 평소에 합리적인 아버지가 그런 영상을 자꾸 공유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치료하면 나을 수 있는 암이라는데 왜 벌써 포기하시나 싶어서 속상했다. 마음이 불편해 다른 병원을 예약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빠르게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선생님은 수술과 방사선 치료의 장점과 단점을 쉽게 설명해 주셨다. 각 시술의 장단점이 있으니 고민해 보고 궁금한 것은 언제든 물어보라는 말씀이었다. 수술은 간단하지만 나이 든 어르신들은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어서 각종 검사를 시행해 봐야 한다고 했다. 또, 방사선 치료는 번거롭기는 하지만 요새는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암 발생 부위를 정확하게 조사하기 때문에 나이 든 어르신들이 많이 선택하신다고도 했다. 어쨌든 전립선암은 예후가 나쁘지 않아서 잘 치료받으면 완치에 가깝게도 될 수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잘 치료받으면 된다는 말씀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밖으로 나오는데 아버지가 대뜸 “아이고 시원하네. 이 교수님 설명 들으니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라고 하셨다. 처음 진단을 받았던 곳의 의사는 수술할 경우의 부작용, 방사선 치료를 할 경우의 부작용 등을 쉴 새 없이 말했던 것이다. 아버지 생각에 그렇게 부작용이 많고 고통스럽고 힘들다면 치료를 안 받고 편히 살다가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니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았다. 이제야 아버지가 이해가 되었다. 다행스럽게 그날의 진료 이후 아버지는 이전과는 달리 힘을 내서 적극 치료를 하기로 결심하셨다.


같은 증상, 같은 환자인데 의사에 따라서 또 의사의 말에 따라서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겠다 싶었다. 또, 아버지가 그 병원에만 갔다가 한 사람 말만 듣고 삶을 포기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드니 아찔했다.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난 의사는 혹시라도 자기한테 책임이 전가될까 두렵고 불안했을 것이다. 좋은 의사와 연이 된 것, 그리고 그 의사가 자기방어적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환자에게 잘 설명을 하는 자신감 있는 분이라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이렇게 말 한마디로 사람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


하나 더 발견한 것이 있다. 검사 예약을 하고 집으로 오는데, 아버지가 밝게 웃으시면서 간호사 선생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른 과 진료를 받으러 기다리는데 간호사 이름이 ‘기쁨’이었다. 이름이 참 좋다고 칭찬을 하며 인사를 하신다. 나이가 들어 아버지와는 집안의 곤란한 일 위주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따로 살다 보니 잊고 있었다. 중병으로 진단받고 사람들이 많은 큰 병원에서 정신이 없는데도 함께하는 사람에게 감사를 표하고 예쁜 이름을 알아봐 주는 사람, 그게 우리 아버지였다. 큰 재산은 물려받지 못했지만 내가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될 강점인 ‘긍정’을 아버지께 배웠구나 싶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내 강점 1, 2위를 다투는 ‘긍정’과 ‘사교성’이 내가 아버지께 물려받은 큰 유산이다.


지금은 방사선 치료를 앞두고 있다. 지난번에 방사선 횟수를 잡으려고 방사선 전문의 진료를 받고 나오면서 갑자기 울컥 눈물이 쏟아졌다. 괜찮은 척했지만, 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나도 마음을 많이 쓰고 있었구나 싶어서 아버지한테 안겨서 엉엉 울었다. 그래도 요새는 아버지를 같이 병원에 모시고 다니면서 전화로는 하지 못했던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참 감사하고 고마운 시간들이다. 아버지가 몸소 가르쳐 주신 ‘긍정’ 파워로 힘내서 잘 모시고 다녀야지.


※본 글은 국민일보 혜윰노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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