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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중식당엔 메뉴 첫 장에 A 세트, B 세트, C 세트가 있다. 주로 찬 음식에서부터 수프, 메인 요리, 식사 순으로 구성된 메뉴들이다. 가격대의 차이가 우선이고, 그 가격대에 따라 가짓수는 한두 개씩 늘어난다.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가격대를 기준으로 주문하는데 중식 메뉴를 잘 알지 못하는 게 제일 큰 이유일 테지만, 그냥 세트 메뉴가 편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일일이 사람들의 입맛을 다 맞출 순 없는 주문자의 책임 회피용 메뉴일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마저도 귀찮아서 탕수육에 짜장면, 짬뽕을 습관처럼 주문하고 만다. 과연 이 방식이 괜찮은 것일까? 나는 결사반대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등산 동호회 분들과 호주 멜버른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하루 종일 그레이트 오션 워크를 트레킹하고 난 뒤, 의논 끝에 근사한 중식당을 찾았다. 일행은 둥근 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뭘 시키지? 메뉴판을 살펴보니 당연히 영어로 적혀 있고, 잘 알지 못하는 중국 한자가 설명처럼 붙어 있었다. 서로가 당혹해 할 때, 내가 과감히 나섰다. 나한테 맡겨 주면 맛있는 중국요리를 먹게 해주겠다고 공언했다.


곧 나는 그간의 수많은 경험을 되살려 주문을 했다. 수프 종류부터 시작해서 야채 요리, 전채 요리로 간단한 딤섬 몇 가지, 메인으로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좋아하는 닭고기 요리, 돼지고기류, 해삼/전복/관자류 등 사람 수만큼의 요리를 시켰다. 10여 가지의 음식을 다 먹고 난 뒤 하나같이 자기가 해외에서 먹어본 중국 음식 중에서 최고였다고 하며 감사의 말씀을 주셨다. 더불어 어떻게 처음 와본 중식당에서, 그것도 해외에서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골고루 시킬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여러분은 궁금하지 않은가? 어떤 비법이 있어 해외에서도 중국 음식을 잘 시킬 수 있는 것인지 말이다. 비법은 간단하다. 많이 실패를 해본 덕분이다. 한때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로 해외출장이 잦았고, 당연히 온갖 나라의 음식을 접해본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해외 출장 시 내가 가진 신념은 ‘절대로 세트 메뉴는 시키지 않는다’였다. 그 나라의 문화를 알려면 먼저 음식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음식을 골고루 먹어보기 위해서는 내가 직접 하나하나씩 메뉴를 선택해 보는 것이 필요했다. 당연히 실패가 찾아왔지만 그것 또한 재미있는 경험과 추억이 되었다. 더구나 나는 ‘자기효능감’이 센 사람이라서 내가 주문한 음식이 기대치를 넘어설 때 행복감이 한층 높아지기 때문에 더더욱 골라 먹는 것을 찬양(?) 했다.


지금도 나는 음식에 도전한다. 자주 가는 중식당에서도 5개 정도 요리를 시키면 그중 하나는 내가 자주 접하지 않았던 음식을 포함시킨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내가 즐길 수 있는 내 삶의 선택지이자 내 삶의 풍요라 생각하고 흔쾌히 받아들인다. 또한 그것이 실패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 않는 나만의 비법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kdaehee@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