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51세가 될 때까지 그이와 26년을 살았습니다. 최소 26년은 더 함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배가 아파서 응급실에 갔습니다. 기껏 맹장염 정도를 생각했는데 아니랍니다. 난소암이라는 겁니다. 암이란 단어 cancer와 무효의 cancel이 왜 한 끗 차이인지 그때 깨달았습니다.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제 남편과 결혼해 주실 여성분을 찾습니다. 단연코 말씀드리는데, 그이는 금세 사랑에 빠질 만한 남자입니다. 아버지 친구가 소개해 줘서 만났는데, 첫눈에 반했습니다. 9,490일을 함께 살아본 제가 장담합니다. 키 1m78cm, 몸무게 73㎏, 희끗희끗한 머리(salt-and-pepper hair)에 갈색 눈을 가졌습니다. 성공한 변호사, 훌륭한 아빠, 옷 잘 입는 멋쟁이, 기막힌 요리사인 데다 집안 구석구석 못 고치는 것이 없습니다. 아 참, 엄청나게 잘생겼다고 말했나요? 제가 소망하는 건 오직 하나뿐입니다. 부디 좋은 여성분이 이 글을 읽고 그이를 만나 새로운 러브스토리를 꾸려 나가는 것, 그것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조선일보 윤희영 기자의 글을 옮긴 것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오래 살수록 데면데면 해진다는 말이 무색하단 생각이다. 이들은 첫눈에 반했지만 26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다. 사랑이 변하긴커녕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는 게 보인다. 얼마나 좋은 남편이면 죽어가는 아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까? 도대체 어떤 남편이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런 한편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늘 자신 있게 삶을 대했다. 아내에게도 제법 괜찮은 남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근데 아내에게 난 어떤 사람이고, 어떤 남편일까? 내 아내가 만약 나에 대한 광고를 한다면 어떻게 적었을까? 내가 생각한 문구는 이렇다.


“꽤 괜찮은 남자입니다. 성실하고 따뜻하고 유머감각이 좋습니다. 좋은 아빠이고 할아버지입니다. 물론 좋은 남편입니다. 단, 주의사항이 있습니다. 늘 집안을 어지르는 저지레꾼입니다. 장롱문은 늘 열어놓고, 사용한 화장품 뚜껑도 자주 열어놓습니다. 무언가를 제 자리에 두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무언가를 잘 잃어버립니다. 그동안 잃어버린 우산을 합하면 우산 가게를 차려도 됩니다. 지갑, 시계, 핸드폰도 숱하게 잃어버렸습니다. 자주 오버를 합니다. 옆에서 브레이크를 잘 밟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연식이 오래됐다는 겁니다. 아직은 그런대로 굴러가지만 언제 설지 모릅니다. 그래도 사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애프터서비스는 안 됩니다. 반품 불가입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