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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0년대 필자는 4~5년 동안 3개의 팀을 전전하며 팀장으로 근무해야 했다. 그때까지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해외지점에서 보낸 나의 가장 크고 비밀스러운 고민은 본사의 일을 잘 모르고, 팀 내 부하들의 일은 더 모른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나는 ‘기특하게도’ 실무를 배워서 부하들이 하는 일을 꼼꼼하게 관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팀의 간단한 행동지침을 만들고 실무에는 팀 내 소통과 목표를 수시로 확인하는 것 외에는 별로 개입하지 않았다. 그 대신 상사의 이해를 촉진하거나, 이해관계자와의 우호적인 관계, 팀원의 사기진작 같은 분야에 집중하였다. 다행히 팀장이 실무를 몰라서 발생한 몇 건의 문제를 제외하고 우리 팀은 회사가 기대하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지금은 그때 같이 근무하던 부하들도 대부분 퇴직하였는데, 이따금 만나면 필자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그때 가장 재미있게 일했다는 말을 해주곤 한다.


미국의 심리학자 리처드 라이언(Richard Ryan)과 에드워드 데시(Edward Deci)는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을 통해 내재적인 인간의 동기가 인간의 성공과 성취의 기본 촉매로 이것은 자율성, 역량, 관련성의 요소로 구성되고 직원에게 부여하는 자율성은 더 큰 만족도, 성취감 및 몰입도를 촉진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외에도 자율성이 직원들의 생산성과 몰입도를 높인다는 연구는 다수 있다. 자율성은 팀원 각자가 역량이 있고 일의 목표에 대한 확실한 자각이 있을 때 잘 발휘되고 이때 상사의 역할은 그들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일 것이다.


다시 필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이후 한 보직에서 근무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서 실무를 파악하는 정도가 깊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면서 나의 업무방식도 퇴행적으로 변화해서 일에 목표나 맥락보다는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 관심이 더 갖게 되었다. 일을 수행하는 데 나만의 노하우를 갖게 되고 그 노하우를 이용해서 최일선에서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하는 쾌감은 마치 마약과도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어느 순간 내가 부하들과 일하는 방법을 놓고 누가 더 스마트한지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일의 목표와 일하는 방법의 균형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직장인이 가장 보람을 느끼며 성장하는 상황은 자신에게 적합한 프로세스로 목표를 달성할 때일 것이다. 이때 상사의 역할은 그들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프로세스를 찾도록 돕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상사에게는 일하는 방법과 일의 목표를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일 필요하다. 대부분의 상사는 자신만의 성공 스토리가 있고, 이 성공을 가능하게 한 자신의 프로세스가 있다. 상사는 당연히 이 프로세스를 부하들도 따를 것을 요구하기 마련이고 이것은 많은 경우 원하는 성과를 내게 한다. 하지만 상사는 자신의 프로세스가 과연 모든 부하에게 적합한지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다.


상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부하가 일의 목표를 잘 이해하고 있는지, 또 성공한 과업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부하의 개성과 인생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업무 스타일은 개인의 가치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신중함이 중요한 가치인 상사는 스피드를 중요시하는 부하를 경솔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가치인 상사는 사색적이고 생각이 깊은 부하를 답답하다고 느낄 수 있고, 체계적/분석적인 상사는 인간관계를 통해서 목표를 달성하려는 부하를 보고 불안해할 수 있겠지만 조직은 구성원들의 다양성을 통해 발전할 때 가장 큰 기여를 하게 마련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 1908~1970)는 “가진 연장이 망치밖에 없으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인다 – If the only tool you have is a hammer, you tend to see every problem as a nail”라는 말을 했다. 상사가 일의 목표와 일을 하는 방법의 차이를 잘 알고 부하들이 그들의 다양한 가치를 충족시키며 일을 하는 방법을 찾도록 도와준다면 원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은 물론 부하들의 인생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준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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