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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oaching Letter From CMI
 
   
 
 마 전 모 기업에서 프리젠테이션 교육요청을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우리 회사는 대부분이 엔지니어입니다. 임원이 되려면 사장님 앞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대화도 나누어야 하는데 프리젠테이션이 끝난 후 사장님이 역정을 냈습니다. 너무 조리도 없고 스킬도 없어 한심하다며 전 임원을 대상으로 프리젠테이션 교육을 하라는 겁니다.” 평소 관심이 있던 주제이고 임원 시절에 늘 사람들에게 프리젠테이션 관련해 피드백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예스를 하고 준비를 시작했다. 근데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프리젠테이션으로 군대를 갔기 때문이다. 그때 단어로는 차트병이다. 난 군대 얘기를 하지 않는다. 군대 얘기 꺼내는 일은 거의 없다. 근데 이번은 예외다. 프리젠테이션에 얽힌 기억 때문이다. 

1977년 12월 19일, 내가 군대 간 날이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학기말 시험을 치르고 바로 군대를 간 것이다. 그 날 난 연무대까지 버스를 타고 가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 둔 날이다. 1980년 3월 12일 내 전역일이다.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뻤던 날 중의 하나이다. 그 날 난 용인에 있던 부대를 당당하게 걸어 나왔다. 내 앞에는 대망의 80년대가 놓여 있었다. 71032729는 내 군번이다. 일반 군번과는 다르다. 지원입대를 했기 때문이다. 지원입대라니?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다들 안 가려는 군대를 지원했단 말인가? 난 계획적인 사람이라기 보다는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다. 군대문제도 그렇다. 내 친구들은 대부분 치밀하게 따져서 군대를 갔다. 과 친구들의 절반은 ROTC를 했다. 2학년을 마치고 가는 친구들도 많았다. 화공과나 기계과처럼 과학원에 같은 과가 있는 애들은 과학원 시험을 공부했다. 거기 붙으면 군대를 안 가도 되기 때문이다. 화공과나 기계과 친구들은 대부분 과학원 공부에 매달렸다. 난 입장이 애매했다. 과학원은 섬유과를 뽑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 가고 싶으면 화공과 등으로 전공을 바꾸면 되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어떻게 되겠지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3학년 2학기가 되자 친한 친구들이 하나 둘 군대를 갔다. 친구들이 사라진 가을 캠퍼스는 참 쓸쓸했다. 친구들은 없지, 공부도 재미없지, 여자친구도 없지, 미래는 불투명하지, 돈도 없지, 군대는 가야 하지… 

사실 3학년 2학기가 되면서 난 공부를 하려고 굳게 결심했다. 그래서 청암사라는 공대 기숙사로 들어갔다.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이다. 근데 이곳도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공부하는 친구들은 밤을 새워 공부를 했지만 노는 친구들은 밤을 새워 술을 마시거나 포커를 쳤다. 난 어정쩡했다. 공부도 아니고 술도 아니고 그야말로 이도 저도 아닌 생활을 했다. 근데 자꾸 몸이 처졌다. 그래서인지 기숙사 들어간 처음 3일간 늦잠을 자는 바람에 첫 수업을 늦었다. 두 시간 버스를 타고 와서도 들었던 첫 수업을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서 늦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참 내 자신이 싫었던 시절이다. 그렇게 지낼 바엔 군대라도 다녀오는 것이 낫겠단 생각이 들었지만 신체검사를 받고 정식으로 영장을 받으려면 시간이 걸렸다. 이번 학기에는 불가능했다. 그때 누군가가 내게 종로에 차트학원이 있는데 거길 다니고 시험을 봐서 붙으면 차트병으로 (차트는 큰 모조지를 뜻한다. 매직으로 글씨를 크게 써서 보고를 했다)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게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돈을 내고 학원에 등록은 했는데 두 세 번 나가고 거의 나가지 않았다. 기숙사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뭐가 분주했다. 술 자리도 많고 소개팅도 많아 거의 생활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당연히 차트학원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11월 말 쯤 차트시험을 보라는 통지가 왔다. 그래도 학원비가 아까워 시험은 봤지만 붙을 가능성은 없었다. 근데 며칠 후 합격통지와 함께 12월 19일까지 입대를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취소하려고 했지만 불가능 하다는 얘기만 들었다. 

그렇게 해서 난 군대를 가게 되었다. 입대 후 난 차트병으로 자질이 부족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워낙 날림으로 붙은 것이 들통난 것이다. 나를 받은 사수는 난감해했다. 나 역시 차트병의 일과가 고달파 보여 내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난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근무하면서 발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같은 일을 해도 차트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조리 있게 발표를 하면 상사의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발표를 못하는 사람들은 불이익을 받았다. 졸병인 내 눈에도 대번에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발표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나온 장교들은 내 앞에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이상하게 단장님 앞에서는 헤매. 내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억울해…” 난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아, 그게 실력이야, 아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 아니겠어.” 여러분의 발표능력은 어떤가? 아는 것은 많은데 발표를 못한다고 생각하는가, 아는 것은 별로 없는 데 발표는 잘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럼 실력의 정의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프리젠테이션 교육을 준비하면서 든 생각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