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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래 눈치 보느라 눈동자가 토끼 눈처럼 빨개졌습니다.” 한 부장이 내뱉은 이 농담은 중간관리자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서다. ‘It’s the manager!’ 당신은 이 말을 어떻게 번역하는가. “매니저 덕분이야!” 또는 “매니저 때문이야!” 단어 하나가 바뀔 뿐이지만, 팀 몰입도와 성과 곡선은 정반대로 갈라진다. 안타깝게도 많은 조직이 중간관리자를 ‘덕분’이 아닌 ‘때문’으로 여겨 그들을 샌드위치로 만든다. 수평 조직, 애자일 조직 등 새로운 문화 바람이 불 때마다 중간관리자는 혁신의 걸림돌, 개혁의 대상으로 꼽히기 일쑤다. 최근 Z세대 중심으로 전 세계에 불고 있는 승진 거부 현상(Conscious Unbossing)도 이런 중간관리자 폄하 현상과 상관이 있다.


과연 중간관리자는 ‘낀대’와 ‘틈장’에 불과할까? 알고 보면 조직 퍼포먼스의 숨은 지렛대는 바로 중간관리자 계층이다. 美갤럽이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팀 몰입도 차이’의 70%가 사수 즉, 직속 리더에 달려있다. 하지만 같은 해 자료에서 전 세계 관리자 중 ‘일에 몰입한다’고 답한 비율이 30%에서 27%로 낙폭을 보였고, 하향 추세다. 중간관리자들의 정서 지표도 밝지 않다. 특히 외로움, 슬픔, 분노가 비관리자보다 더 높다.


이런 현상엔 중간 관리자를 샌드위치에 머물게 하는 현재 상황도 한몫 한다. 중간관리자가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도, 마냥 버틸 수만도 없는데 이들의 어깨에 짐을 지우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중간관리자 관련 아티클 <중간관리자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중간관리자의 미래> 등은 중간관리자의 중요성과 역할 재설계, 아니 재발명을 강조하고 있다. 단지 상하 조율의 교통정리가 아니라 팀원의 잠재력을 증폭시키는 리더가 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첫째, KPI에 팀 몰입도, 조직 학습 지수 등 사람 중심 지표를 반영해야 한다. 잡무·보고·승인 위주 직무 기술서를 ‘코치·오케스트라 지휘자’로 교체함으로써 역할과 평가 방식을 동시에 바꾸면 관리자는 상명하달 샌드위치가 아닌 가교형 리더로 재탄생할 수 있다.


둘째, 중간 관리자 역량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실무와 잡무에 바쁜 이들 관리자는 교육에 자의·타의로 소극적이기 쉽다. 이들이 자신의 문제를 현장의 케이스로 풀어내며 비즈니스 시뮬레이션, peer learning을 결합해 ‘학습→실험→피드백’ 사이클을 가속하고 성과로 재확인하는 루프를 강화한다면 교육 참여도도 높아질 것이다. 특히 동료 간 실전 경험 공유가 전략 실행력을 끌어올리는 지름길이다.


셋째, AI 활용 등을 통한 업무 자동화를 고려해야 한다. 중간관리자의 가장 큰 고충은 ‘과도한 업무 폭증’이다. AI 적극 활용, 회의 줄이기, 아웃소싱 등 다양한 방안을 통해 잡무와 행정 시간을 줄여 인재 개발에 재투입하고, 번아웃 리스크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이제 조직은 중간관리자에게 ‘더 버텨라’가 아니라 ‘다리가 돼 달라’고 요청하고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들이 샌드위치가 아닌 다리가 되어 제 몫을 해낼 때 팀은 사통팔달 소통하고, 조직은 몰입과 학습이 순환하는 생태계를 형성한다. 지금 우리 조직의 중간관리자는 샌드위치인가, 아니면 전략적 교량인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blizzard88@naver.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