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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선배 코치님을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저녁에 그가 카톡을 보내왔다. “고 코치, Burn Out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항상 건강을 제일 먼저 챙기세요.” 나를 케어해주는 따뜻함을 느끼면서, 내 생활을 돌아보았다. 분주하게 여러 역할을 오가면서, 마감이 임박한 숙제를 하듯 일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게으른 시간도 있고, 절친들과의 시간도 있지만 지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다음 날이면 전날 끝내지 못한 숙제가 떠오르고, 또 그걸 완수하려고 나선다. 성취 테마가 나의 핵심 강점이라서 그런가? 여러분은 어떤 편인가?


번아웃의 정체

흔히 일을 많이 해서 지치고 소진되는 걸 번아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학자 마슬라흐의 정의에 따르면, 번아웃이란 소진에 더해, 냉소와 무능감까지 동시에 올 때 생긴다. 소진은 에너지를 다 써서 힘이 없는 것, 냉소는 비인간화하고 일이 문젯거리로만 보이는 것, 무능감은 비효능감으로 무엇도 성취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일하다 보면 피로감과 좌절감, 과도한 긴장이나 화를 느끼는 경우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게 번아웃은 아니다. 진짜 번아웃이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물리적으로 어렵고, 하루 업무가 겁이 나고,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상사나 고객, 가르쳐야 할 학생이 악마처럼 보인다고 한다.


왜 단순 근로자에게 번아웃이 없을까?

말레식은 미국 대학의 신학과 교수였는데 심한 번아웃 때문에 그토록 원했던 커리어를 포기하고 학교를 그만두었다. 그게 번아웃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미국 노동자의 약 8% 정도가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하고, 번아웃은 80% 확률로 우울증과 같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는 저학력 단순 근로자에게는 번아웃이 없다는, 뜻밖의 결과를 들려준다. 그는 방학 때 주차장에서 주차요원으로 알바를 했는데, 이상하게 좋았다. 우선 일이 쉬웠다. 고객의 차를 주차해 주고 차량 관리하는 일이니까. 동료 주차요원들과 농담을 주고받았고, 고용주는 친절했다. 가끔 고용주가 피자를 돌리면 행복했다. 퇴근할 때 머릿 속에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고 시원하게 퇴근했다. 이 대목에서 나도 깨달았다. 단순 작업을 할 때 왜 힐링 되는 기분이 드는지. 아, 일이 쉬워서였구나!


번아웃을 겪기 쉬운 이들은 헌신적이고 전념하는 사람들이다. 스스로의 내면적 압박감과 상사나 고객의 외부적 압박이 있는데, 이를 도저히 해날 수 없을 것 같이 느끼는 순간 무너지는 것이다. 말레식은 번아웃을 ‘일에 대한 이상과 직업 현실 간의 간극 사이에서 분투하는 경험’이라고 정의한다. 왜 높은 이상이 문제가 될까? 아무리 해도 못해 낼 것처럼 느끼고, 타인의 인정에만 매달리는 상황이 좌절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번아웃의 종말〉 조나단 말레식, 2023)


일반적으로 소득이 높은 고학력자들이 저학력자에 비해 업무시간이 길고 여가시간이 짧다. 한 번의 성취는 또 다른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일 뿐이고 여가나 휴식도 자체를 즐기기보다 다음 일을 위한 재충전으로 생각한다. 이렇게 삶의 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일만으로 자신을 규정하다 보면 위태로워지는 거다. 나의 가치를 남의 손에 맡겨 두었으니 불안하고, 기대에 못 미칠까 분투하는 것이다.


번아웃의 해결은 문화의 문제

번아웃에 대한 통상적인 처방은 이런 것들이다. 수면 시간을 늘려라, 거절하는 법을 배워라, 명상하라, 우선순위를 정하라 등등. 하지만 그런 기술적인 처방 말고 정말 돌아봐야 할 것은 일터의 문화가 아닐까 한다. 인간 존엄성과 공감, 존중의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일이 중요하지만 인생의 목적과 가치를 중시하는 자신감, 옆 동료에게 관심을 가지고 힘들어 보일 때 케어하는 문화 같은 것이 중요하다. 마치 얼마 전 나에게 카톡을 보낸 그 선배 코치처럼.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