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태생적으로 허점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어릴 때 별명 중 하나가 덜렁이다. 뭔가 자꾸 까먹고 잊고 흘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이런 특성은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물건 잃어버리기 대회가 있다면 금메달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동안 잃어버린 우산만 모아도 우산 가게 하나는 거뜬히 차릴 것이다. 게다가 할 줄 아는 일 외엔 아는 게 별로 없다. 특히 뭔갈 조립하거나 고치는 쪽으로는 멍청이 수준이다. 이런 내게 딸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아빠 서울대 나온 거 맞아?”다. 그럴 때마다 “나도 내가 서울대를 나온 것이 의심되니 졸업 증명서를 떼어 봐라.”라고 응수한다. 나도 이런 내가 싫지만 쉽게 고칠 수 없다. 그러니 누가 이런 부분을 지적해도 받아들이고 인정하려고 노력한다. 그럼 분위기가 좋아진다. 그런 면에서는 쉬운 남자다. 이는 유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유머가 있는, 부드러운 사람이 되려면 자신을 스스로 낮출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은 예전 회사의 사장님이다. 그는 대머리에 작고 동안인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늘 자신의 대머리를 웃음의 소재로 삼았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내가 말이지 어제 골프장에 갔더니 캐디가 세 번 놀라더군. 처음에는 내 비싼 골프채를 보고, 두 번째는 내 화려한 복장에, 마지막이 언제인지 아는가? 내가 모자를 벗을 때…” 다들 뒤집어졌다. 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유머를 몇 가지 소개한다. 가장 먼저 투나잇 쇼의 자니 카슨 (1925-2005)이다. 그는 한때 NBC 수익의 17%를 차지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가졌던 진행자로 균형감각, 솔직과 유쾌의 상징이다. 그는 4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 경험이 있는데 누군가 결혼에 대해 조언을 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내가 결혼에 대해 충고하는 것은 타이타닉호 선장이 항해술에 대해 강의하는 것과 같다.”라며 사람들을 웃겼다. 묘비명을 무엇으로 할 거냐는 질문에 한참 생각한 후 “I will be back”이라고 얘기했다. 광고 후 다시 오겠다는 말이다. 뉴트 깅그리치 전 미 하원의장도 그렇다. 그는 소니 보노 의원의 장례식에서 이런 조사(弔辭)를 했다. "고인은 첫 의회 연설에서 때 묻은 정치인들은 물러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후 나는 그가 내 사무실에 들어올 때마다 내 자리를 노리는 것 같아 위협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때묻은 사람이란 걸 은연중 드러낸 것이다. 두 눈이 실명인 안요한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저는 아내와 결혼하면서 한 약속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그 약속을 공개하겠습니다. 또 그 약속만큼은 철저히 지켰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눈팔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실명인 자신을 빗대어 한 유머다. 어릿광대는 스스로를 바보로 만들면서 모두에게 여백을 주는 존재이다. 인간은 누구나 바보라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다. 자기가 똑똑하다고 하는 자는 더할 나위 없는 바보다. 자신에 대해 웃을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는다. 스스로를 웃음의 소재로 할 수 있는 개인과 조직은 그 자체로 건강하다. 다른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보다는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바보임을 알고 있는 바보는 이미 바보가 아니다.” 볼테르의 말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hans-consulting.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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