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침실 머리맡에는 조그마한 걱정인형 두 개가 작은 유리병 안에 담겨 있다. 걱정인형은 과테말라 고산족 풍습의 산물이다. 어린아이들이 다음 날 걱정 때문에 잠을 쉽사리 이루지 못해, 잠자기 전 걱정인형에게 자신의 고민을 넘겨주고 편하게 잠자게 하는 풍습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모 보험사가 이 걱정인형을 마케팅 광고에 활용해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작년 어느 코칭 모임에서 코치 한 분이 많은 수고 끝에 걱정인형을 만들어 와서 참석한 코치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고맙게도 나도 인형 두 개를 선물 받았다. 선물을 받으면서 이 인형을 아내에게 꼭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내가 항상 깊은 잠을 못 이루고 수면에 장애가 있기 때문에 아내에게 걱정인형의 설명을 덧붙이면서 주었다. 아내는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좋다면서 선선히 이 걱정인형을 받았고, 덕분에 어느 정도는 수면장애에 대해 안정을 찾았다. 내 아내는 나와 같이 산지 벌써 30년이 훌쩍 넘었다. 지금 봐도 참 예쁘고, 살림도 잘하고, 맛있는 요리도 척척 잘하고, 자식들도 잘 키웠으며 어딜 둘러봐도 이런 여자가 다시없을 정도로 같이 사는 나는 너무 행복하다. 딱 하나 흠이 있다면 하하, 잔소리 마왕이다. 지금 사는 집이 10년 정도 되었는데, 가끔씩 지인들이 놀러 오면 엄청 놀란다. 새 집이기 때문이다. 집안 모든 곳은 하나같이 잘 정리되어 있고, 눈에 거슬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거실이나 식탁이나 부엌에도 티끌 하나 없다. 완벽한 매니지먼트다. 그런 성격이다 보니 내가 외출을 할 때는 으레 확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바지와 셔츠, 재킷의 색상 밸런스는 당연하고 날씨와의 어쩌구저쩌구 적합성까지 검열을 받아야만 외출할 수 있다. 특히 어디 중요 회의에 참석하거나 결혼식에 참석할 일이 있어 정장을 하게 되면 셔츠와 넥타이의 통과율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밥 먹을 때는 또 어떤가? 빨리 먹어도 안 되고, 흘려도 안 되며, 씹는 소리는 절대 금물이고 입을 벌려서 먹으면 곧바로 아웃이다. 이제는 아들이나 나나 완벽한 순종형이 다 되었다. 그게 편하게 사는 길이기 때문이다. 아들이나 나나 집안의 행복을 위해 알아서 긴다. 어찌해서 백설공주가 마귀할멈(아들이 엄마를 놀릴 때 자주 쓰는 단어)과 같은 잔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강점 코치가 되고 난 후, 우리 가족들의 강점 진단을 받게 했다. 가족들의 강점을 알게 되면 가족들 간의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내 아내의 진단 결과를 보고 난 뒤 혼자서 푸하하 폭소를 터뜨렸다. ‘그랬구나. 그래서 잔소리 마왕이었구나’라는 깨달음이 왔다. 최상화 / 책임 / 체계 순으로 Top 5가 이루어져 있었다. ‘최상화’ 강점은 반짝이는 진주를 닦고 또 닦는 것이고, ‘책임’은 자신이 맡은 일은 올바르고 끝까지 완수하는 역량이며, ‘체계’는 일상의 순서를 정리하여 효율적으로 일하는 강점인 것이다. 강점 진단 결과를 보고 어쩔 수 없이 잔소리 마왕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수긍할 수 있었다. 참 고마운 진단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침실에서 아내와 얘기를 하다가 머리맡에 있는 걱정인형을 보고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래, 내가 잔소리인형이 되자. 그러면 아내한테 받는 잔소리에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깨달음에 내가 자처해서 ‘잔소리인형’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농담같이 한 이 선언이 나에게 엄청 행복한 길을 열게 해주는 열쇠가 되었다. 그 선언 이후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잔소리를 들으면 행복해져야 잔소리인형이 되는 것이어서 그 이후로는 잔소리가 노랫소리로 바뀌고 만 것이다. 어떤 잔소리도 다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쩌면 잔소리를 잔소리라 인식하지 않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하.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나의 변화에 맞춰 내 아내도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잔소리를 하면 당연히 저항을 하고 언성도 높이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느꼈는데, 이 나쁜 남편이 잔소리인형이 되고 난 뒤, 잔소리를 잔소리라 받아들이지 않고 히죽히죽 웃고 있으니 미칠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놀랍게도 아내의 잔소리가 줄기 시작한 것이다. 오늘도 침실에는 걱정인형과 잔소리인형이 나란히 잠을 잔다. 걱정인형이 잔소리인형에게 묻는다. 오늘 잔소리 많이 받았느냐고? 잔소리인형은 답한다. 그래서 행복하다고. 두 인형은 꿀잠을 청한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kdaehee@gmail.com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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