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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인어른은 올해 여든네 살이시다. 오랫동안 을지로에서 시멘트회사의 대리점을 하셨다. 시멘트를 양회나 쎄멘이라고 부를 때부터였으니 얼추 50년은 하셨을 거다. 지금은 당연히 은퇴하셨지만 아직도 을지로에 장인의 사무실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매일 사무실에 나가신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올라간 좁은 방이다. 을지로 이면도로에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의 2층이다.

처음에는 사무실을 혼자서 쓰시다가 업황이 부진해지면서 친구들과 같이 쓰셨다. 그러나 지금은 휑뎅그렁한 사무실에 혼자 남으셨다. 같이 사무실을 쓰시던 분들이 하나 둘 돌아가셨거나 거동을 못 하신다고 한다.

그런 장인에게 치매 초기 증세가 왔다. 깜빡깜빡 하신다. 그런데도 사무실에 계속 나가신다.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에 지하철도 한번 갈아타야 하니 아내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길은 잃지 않으시는지 매일 나가서 도대체 뭘 하시는지 궁금하고 걱정도 되어 얼마 전 아내가 장인을 따라 출퇴근을 같이 해 보았다.

“아버지가 사무실에 들어가시더니 기운이 넘치시는 거야. 눈빛도 달라지시고 동작도 빨라지시고.”

오랜만에 사무실에 온 딸에게 커피를 타 주시겠다고 장인은 커피포트에 물을 끓이셨다. 장인도 한국 남자답게 집에서는 꼼짝도 안 하시는 어른이다. 커피포트에 때가 껴 꼬질꼬질한 걸 본 아내는 잔과 포트를 닦아 드렸다.

“아버지가 젊어 보이시는 게 다른 사람 같았어.” 아내가 눈가에 손을 가져갔다.

사무실에 불과 이십 분이나 머물렀을까. 장인은 아내에게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다. 아내가 맛있는 거 사드린다고 해도 장인은 늘 가시는 식당으로 아내를 끌었다.

“2인석에 벌써 아버지 자리가 세팅이 되어 있는 거야. 식당 사장님 얘기가 늘 우거지국만 드신대.” 점심을 먹고 두 사람은 은행에 들렀다. 장인은 돈 들어온 게 있는지 매일 통장을 찍어본다.

“지하철 타시는 것도 정확하셔. 몇 번 차량 어느 문에서 타야 갈아타는 통로가 가깝다고 정확히 아시더라고.” 다녀와서 아내는 장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다고 한다. 아버지한테 사무실 정리하라고 하지 마시라고, 잘 다니시니 걱정 안 하셔도 된다고. 그리고 사무실에서 아버지의 이십년 전 활기 넘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장인어른은 썰렁한 사무실에서 무엇을 보셨을까. 호경기에 시멘트 팔라고 줄 서던 건축업자들을 보았을 것이다. 한겨울 비수기에 모여 고스톱치던 친구들의 즐거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엄마 몰래 용돈이 필요하다고 찾아온 여고생 딸의 단발머리를 보았을 것이다. 돈 떼먹고 사라진 업자의 부도 어음이 찢겨 나가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아, 인간에게 일이란 그런 것이다. 일터란 또 그런 곳이다. 기운 없는 노인의 다리에 힘이 들어가고, 깜빡거리는 정신에 계산머리가 돌아오고, 근처 중국집의 짜장면 맛이 그리워지는 곳이다.

그것은 젊은 시절 열정을 바쳤던 일이고 장소이다. 어른들이 ‘라떼는 말이지’ 또는 ‘옛날에 여기서 말이야’ 하고 무용담을 시작할 때 잘 살펴보라. 주름살은 펴지고 허리는 곧게 서고 목소리는 맑아진다.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삼십 년 후에 내게 원기를 주고 미소 짓게 할 추억이 될 것이라면 일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커피 한잔 놓고 가는 옆 자리 동료가, 나를 괴롭게 하는 고객이, 뒤에서 나를 부르는 얄미운 상사가, 지금 이 사무실과 현장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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