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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잘 살다 몇 년 후 어렵게 살래, 아니면 지금은 다소 어렵지만 몇 년 후 잘 사는 걸 택할래 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이럴 때 꼭 지금도 잘 살고 미래에도 잘 살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 건 없고 둘 중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난 지금 다소 어렵더라도 미래에 잘 사는 걸 택할 것이다. 그게 훨씬 사는 맛이 나기 때문이다. 나도 그렇지만 내 친구들은 대부분 개룡남이다. 개천에서 난 용들이다. 다들 어렵게 살다 요즘 살림이 핀 친구들이다. 그래서 걸핏하면 모여 과거에 자기 집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무용담처럼 얘기한다. 거기서는 더 어려웠던 사람이 승자이다. 미래에 잘 산다는 보장만 있으면 과거에 어려운 건 오히려 자산일 수 있다. 인생역전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계속 잘사는 것보다는 못 살다 잘 살면 효용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흔히 행복은 미래나 과거에 있지 않고 현재에 있다고 얘기한다. 맞는 말이지만 동시에 틀린 말이다. 행복은 현재 못지 않게 미래에 달려 있다. 지금이 행복해도 미래가 불안하면 행복하기 어렵다. 직장인들은 금요일 아침이 즐겁다. 오늘만 일하면 이틀을 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일요일 오전은 즐겁지 않다. 저녁이 되면 괴롭다. 오늘 하루는 쉴 수 있지만 내일부터 고단한 일상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분명 현재를 즐기는 것이 행복이란 사실을 머리 속으로는 알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게 인간이다. 반대로 현재가 다소 힘들어도 지금 고생이 조만간 밝은 미래로 이어질 것이란 희망이 있으면 현재의 고생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당신 답은 무엇인가? 대당 1억씩 줄 테니 매일 한 대씩 100일 동안 매를 맞을래? 아마 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맞는다고 나설 것이다. 매일 매를 맞는 것은 싫지만 석 달 맞고 나면 100억이 생기는데 못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아마 기쁜 마음으로 맞을 것이다. 

행복을 위해 현재를 즐기라는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래가 보장된다는 가정하에 유효하다. 미래가 불안하고 두렵다면 현재를 즐기기 어렵다. 돈도 그렇다. 누군가 나타나 “100억을 주겠다, 근데 한 달 후에 죽는다” 라면 당신은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100억이 있는데 쓰건 쓰지 않건 하루에 1억씩 빠질 것이고 석 달 후 파산이다”라고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지금의 부에서 아무런 행복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미래는 현재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주변에는 용감한 사람들이 많다. 전셋돈을 빼서 전 가족이 여행을 가는 사람도 있고, 인생 뭐 있느냐며 비싼 술집에서 한 달치 월급을 쓰기도 하고, 가진 것 없는 사람이 비싼 외제차를 뽑기도 한다. 나름 생각이 달라 하는 행동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경우는 전셋돈을 빼서 여행을 다닐 수도 없겠지만 여행을 다녀도 풍광이 눈에 들어올 것 같지 않다. 여행이 끝난 후의 걱정 때문에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 것 같다. 오히려 지금 사는 곳이 누추하고 일상이 고달파도 미래를 위해 지금의 고생을 참는 쪽을 택할 것 같다.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라는 얘기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모든 걸 참으라는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 현재를 즐기라는 진부한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얘기는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는 다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를 떼어서 따로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생이 그렇다. 과거에 고생을 했어도 지금 사는 것이 행복하면 과거 고생은 멋진 추억이 될 수 있다. 과거의 부귀영화도 지금이 불행하다면 일장춘몽을 넘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미래도 그렇다. 미래에 희망이 보이면 지금 힘든 것은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다. 반대로 앞이 보이지 않으면 지금 잘 사는 것도 마음껏 즐길 수는 없는 법이다. 

미래가 현재 행복을 좌우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결과에 상관없이 씨 뿌리는 일을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살아생전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계속 공부하는 것, 운동하는 것, 나무를 심는 것,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는 것,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것, 환경에 관심을 갖는 것 등이 그것이다. 현재를 즐기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지만 미래 또한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사는 건 위험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