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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세 번의 피드백을 했다. 한 번은 대학원 코칭 실습 시간이었고, 또 한 번은 슈퍼비전 실습 시간, 마지막은 고객 미팅 때였다. ‘부탁 받지 않은 조언과 충고는 비난’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웬만해선 피드백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부탁 받은 피드백도 망설일 때가 많다. 

첫 번째 대학원 코칭실습 피드백은 부탁 받은 피드백이다. 부탁 정도가 아니라, 실습을 지도하는 사람으로서 의무적으로 피드백을 해야 했다. 세 명의 학생이 실습을 했고, 동료 학생들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피드백을 하는 자세에 대해 누누이 강조한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피드백하지 마라. 피드백을 받는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으로 오직 상대방을 도와주기 위한 마음으로 피드백하라. 내 피드백은 또 다른 하나의 의견일 뿐, 내 피드백이 옳다는 생각을 하지 마라.’ 

피드백에 앞서 나는 망설였다. ‘지금 이 피드백이 학생들에게 과연 도움이 되는가? 지금 상태의 학생들에겐 어려운 게 아닐까? 지금 이런 피드백을 하는 게 맞는 걸까?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걸까?’ 이런 망설임을 하면서 결국 피드백을 했다. 학생들의 코칭 실력 향상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드백을 하고 난 후에 마음이 불편했다. 피드백을 받는 학생의 마음이 아프지 않을까 염려됐다. 비록 부탁을 받았을 지라도 피드백은 언제나 불편하다. 다행히도 피드백을 받은 학생의 수용성이 높았고 배우려는 열정이 강해서 피드백이 도움이 됐다는 말을 다른 학생을 통해 전해 들었다. 두 번째 피드백은 슈퍼비전 실습 때다. 한 사람은 슈퍼바이지, 한 사람은 슈퍼바이저, 나는 관찰자 역할이었다. 슈퍼비전을 관찰하고 피드백 하는 게 내 임무였다. 나는 많은 내용을 피드백했다. 슈퍼바이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공부하는 마음으로 했다. 슈퍼비전을 했던 코치는 코칭 경험도 매우 많고 코칭 역량도 뛰어나며 성품도 좋은 분이다. 피드백을 하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내 피드백은 하나의 의견일 뿐, 내 피드백이 반드시 옳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슈퍼비전에서 이런 걸 발견했다. 이런 걸 봤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한다면 이렇게 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평가자의 태도가 아니라 학습자의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피드백을 받은 코치는 매우 훌륭한 태도로 피드백을 수용했다. 피드백의 내용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내 피드백을 하나의 의견으로 받아주었다.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받는 자세에 대해 강조한다. ‘피드백은 또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자신이 했던 코칭도 하나의 방법이고, 피드백도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피드백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 받고,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면 받지 않으면 된다. 피드백에 상처받지 말고, 피드백에 대해 토를 달지 마라. 피드백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감사하게 받고 내용은 자신이 판단해서 취사선택하라.’ 

세 번째 피드백은 동료 코치와 함께 고객 미팅을 할 때였다. 나는 고민했다. ‘이 피드백을 꼭 해야 하는 걸까?’ 마음속에서 자체 검열이 일어났다. ‘어, 이건 부탁 받지 않았잖아? 부탁 받지 않은 조언과 충고는 비난이라고 스스로 입버릇처럼 말하더니 지금은 왜 하려고 하지?’ 자체 검열에 의해 처음 피드백은 포기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같은 현상이 반복됐다. ‘이건 아니다. 이 분이 이걸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건 말해 줘야겠다. 앞으로 함께 미팅해야 하는 일도 많을 텐데 고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결국 나는 부탁 받지 않은 조언을 했다. 미팅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과연 그때 꼭 그걸 말했어야 했나?’ 지금도 두 가지 생각이 엉킨다. ‘그래 잘했어~ 그 분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한 거니까~’ ‘아니야, 그래도 부탁 받지 않은 조언은 비난으로 들릴 수 있어!’ 피드백은 언제나 어렵다. 또 다짐한다. ‘내 피드백은 단지 하나의 의견일 뿐, 언제든지 틀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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