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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쯤인데, 일기를 꾸며내어 쓴 적이 있다. 매일 일기를 쓰고 일주일에 한번 선생님께 내야 하는데, 일상에선 뭔가 일기에 쓸 만한 ‘사건’이 안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상상 속에서 지어내어 쓰거나 평범한 일을 웃기게 과장하기도 했다. 어느 날 그 거짓말이 딱 걸렸다. 그 즈음 일기에 ‘오늘은 언니 생일날이어서 내가 일찍 일어나서 밥을 지었다. 언니가 좋아했다’ 는 식으로 완전 소설을 썼었는데, 나중에 담임 선생님께서 우리집에 가정 방문을 오셔서 대화 중에 그 얘기를 꺼내신 거였다. 어린 데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시며. 당사자인 우리 언니가 “예? 쟤가 밥을요?” 하고 황당해 하자, 선생님도 얼른 사태를 알아차리셨다. 순간 나에게 눈짓을 보내긴 하셨지만 혼내 진 않으셨다. 가족들 앞에서 “얼마나 그럴 듯하게 썼는지, 진짠 줄 알았네요.”라며 웃으셨을 뿐이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이 어떤 뜻인지 그때 알았다.

잠재력을 인정한다는 것
선생님은 나중에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나를 옆에 앉혀놓고 그야 말로 생활태도에 대한지도를 하셨다. 거짓말 한 건 나쁘지만, 네가 글을 잘 쓰는 것 같다며 칭찬도 슬쩍 해주셨다. 그리고선, 글 더 잘 쓰려면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 즉 ‘많이 읽고 많이 써보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를 해주셨다. 얼마나 고상하고 멋지게 들렸던가?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글 쓰는 일에 관한 최초의 각인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한 후 내가 연필로 눌러쓴 짧은 편지를 보내면 선생님은 아름다운 글씨에 유려한 문장으로 쓴 긴 답장을 보내주셨다. 초등 5학년 때 담임이셨던 이연옥 선생님이시다. 글을 쓰는 게 멋진 일이라는 걸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것 같다. 선생님이 나의 잠재력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내 지인은 정 반대의 경험을 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 숙제로 시를 제출했다. ‘구름’이라는 제목의 시였는데, 거기에 어디서 들어본 듯한 표현이 있었다. 그렇겠지, 숙제로 내는 시에는 상투적인 표현이 등장할 수 있지 않은가. 선생님은 교무실로 호출해서는 “너, 이 시 어디서 베꼈냐? 사실대로 말해!” 라고 호되게 추궁했고, 진짜 어디서 베끼지는 않았던 그 어린 학생은 답을 할 수 없었고 선생님은 이를 반항하는 걸로 생각해서 체벌을 심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억울한 질책을 당했던 그 이는 공부를 하고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한동안 ‘나는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나는 글을 쓸 자질이 없는 사람이다’ 라는 무의식적인 생각에 지배 받았다며, 그게 글 쓰는 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고 얘기해주었다.

스승의 날을 또 한 번 보내며
선생님들은 아셨을까? 자신의 말이 그렇게나 크게 제자의 인생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사실을. 채찍 효과라는 (Bullwhip effect)말이 있다. 기업 경영에서 수요 정보가 공급망 상의 여러 단계에 거치면서 더 크게 왜곡되는 걸 말하며, 의사결정과 전략에서도 각 단위의 작은 판단 차이가 나중에 전체에서 큰 차이를 가져오는 현상을 가리킨다. 손목을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 채찍은 크게 휘둘러지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역할이 이와 같지 않을까? 제자에게는 선생님의 농담조차 각인되어 따라 다니는 법, 그래서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큰 보람임과 동시에 두려운 일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나이 들어 누군가의 선생님이 되어 맞는 또 한 번의 스승의 날에 어렸을 적 내 선생님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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