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우(不遇)란 말이 있다. 불우이웃, 불우한 삶을 얘기할 때의 불우이다. 아닐 불에 만날 우이니 만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기회를 만나지 못하고 때를 만나지 못해 불우한 삶을 살았다는 말이다. 근데 만나지 못하는 것도 불행한 일이지만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 역시 불행한 일이다. 대인관계하면 보통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 걸로 생각한다. 난 동의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과 모두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인생은 모두 제한적이다. 제한된 사람들과 제한된 관계를 맺을 수 밖에 없다. 당연히 가려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쓸데없이 인연을 맺지 않아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일은 쉽지 않다. 우선, 질문을 하나를 던진다. 예전엔 정말 친했는데 지금은 소식이 끊기거나 만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반대로 별 인연이 아닌 줄 알았는데 꾸준히 만남을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가? 왜 그런 것 같은가?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관계는 늘 살아 움직인다. 예전에 친해도 지금은 만나지 않는 인연도 있고, 별 인연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하는 인연도 있다. 모든 것에는 유통기간이 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좋았던 관계도 오랜 세월 동안 관계를 맺지 않으면 퇴색하고, 별거 아니었던 관계도 끊임없이 뭔가를 주고 받으면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 그런 면에서 관계는 철저한 현재진행형이다. 난 자연스럽게 인연 맺는 걸 선호한다. 억지로 인연을 맺는 걸 거부한다. 좋은 인연이면 별로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 만나게 될 것이고, 나와 인연이 아니면 내가 노력해도 되지 않을 걸로 생각한다. 그래서 만나자 마자 형님 혹은 언니라고 부르면서 급하게 친한 척 하는 사람을 경계한다. 만나는 모든 사람, 만났던 모든 사람과 인연을 유지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학교 동창이 대표적이다. 40년전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하고 그 당시 별로 친하지 않았던 사람과 만나 무얼 어떻게 할 것인지 별 아이디어가 없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도 않다. 난 오히려 대인관계를 심플하게 하고 싶다. 도의상, 의무적으로 만나는 것도 거부한다.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도 시간이 부족할 판에 뭐 때문에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 시간을 낭비하는가? 그런 면에서 임경선의 “자유로울 것”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마음에 와 닿는다. 그녀의 말이다. “의리상, 도리상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것은 싫다. 의리나 도리란 건 대개 하고 싶지는 않지만 해야 할 때 쓰는 말 아닐까? 만나기는 싫지만 그 사람에게 만족을 주고, 명분을 살리기 위해 지어낸 거 아닐까? 인간관계에서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 오랜 기간 우정과 추억을 나눴던 사람일지라도 현재 그 사람과 인연이 없다면 사실 무용지물이다. 관계는 현재진행형이다. 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의미가 있다. 과거에 아무리 친했어도 현재 만나지 않고 인연을 이어가지 않은 사람은 과거의 사람으로 놔두는 것이 좋다.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어떤 면에서 과거의 인연은 과거의 인연으로 놔두는 것이 서로를 위해 좋을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소중한 추억이 손상될 수도 있다.” 법정 스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헤프게 인연을 맺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쓸데없는 낭비다. 너무 헤퍼서는 안 된다. 잘못 인연을 맺으면 이로 인해 삶이 힘들어진다. 모든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은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일이다. 진실은 진실된 사람에게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일로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아무에게나 진실을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상대에게 내가 쥔 패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피해는 진실 없는 사람에게 진실을 쏟아 부은 결과다.” 여러분의 관계는 어떤가? 관계는 어때야 하는가? 정답은 없지만 난 열린 마음을 선호한다. 관계에서도 적절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싶다. 과거에는 친했지만 지금은 관계가 끝난 과거완료형,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되는 현재진행형, 지금 시작했지만 미래까지 갈 미래진행형, 아직 만나지는 못했지만 미래에 만나 인연을 맺게 될 미래불확실형 등등… 난 그 중 미래에 누구를 만날지, 그와 어떤 인연을 맺게 될 지 가장 궁금하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하듯 관계 또한 변하는 것이리라.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PREV [정홍길] 강점 중심으로 인생을 산다면
-
NEXT [고현숙] 업무 위임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