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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코칭을 마무리할 때였다. 그동안 진행된 그룹 코칭을 통해 느낀 점과 실천한 것에 대해 경험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팀장이 ‘입으로 하는 경청’의 효과와 실천 경험에 대해 말했다.
“저는 팀장으로서 팀원들의 모든 말에 답을 줘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팀원이 있었는데, 이 직원이 말을 길게 하면 저도 지지 않으려고 이 팀원보다 말을 더 길게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마치고 나면 두 사람 모두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대화를 하는 게 아니라 꼭 싸움을 한 느낌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코칭 시간에 굳이 답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입으로 하는 경청’만으로 충분할 때가 더 많다는 말을 듣고, 저는 입으로 하는 경청을 실천해 보기로 했습니다.”

‘입으로 하는 경청’은 상대방의 말을 간결하게 요약해서 되돌려주는 것이다. ‘이렇다는 거군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거군요.’ 등의 방식으로 상대방의 말을 입으로 반응해주는 거다. 차드 멩 탄의 『너의 내면을 검색하라』에 의하면 이 방식을 루핑(Looping)이라고 부른다. 루핑은 ‘의사소통의 고리를 완성한다(Closing the Loop of Communication)’는 뜻이다. 루핑, 즉 입으로 듣는 경청을 통해 의사소통을 완성할 수 있다는 거다. 

팀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말을 길게 하는 그 직원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의식적으로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답답했겠구나.’ 하면서 입으로 듣는 경청을 실천했습니다. 중간에 답답해서 말을 자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무려 30분 넘게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그 팀원이 말했습니다. ‘팀장님,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팀장님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이 직원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고 고집이 세서 정말 설득되지 않는 골칫덩어리였습니다. 그런데 굳이 답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입으로 듣는 경청을 했을 뿐인데 이 직원이 스스로 설득되어 제 의견을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직장에서는 이 팀장의 사례처럼 굳이 답을 주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목표가 너무 많다. 현실을 무시한 정책이다. 이번 조직 개편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우리 회사는 비전이 없다. 우리 조직은 소통이 잘되지 않는다.’ 직원들이 이런 불만을 털어놓을 때, 과연 상사에게 그 해결책을 요구하는 것일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다. 직원들도 상사에게 그럴 만한 권한과 해결책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직원들은 이런 불만을 토로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기 상황과 처지를 알아 달라는 거다. 이럴 땐 굳이 답을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설명하거나 설득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그저 ‘입으로 듣는 경청’을 하기만 하면 된다. 입으로 듣는 경청은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입으로 듣는 경청은 직장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필요하다. 매사 충고를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아들이 군대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다. 친구는 아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했다. 아들이 군대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토로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친구가 말했다.“요즘 군대도 군대냐? 내가 군대 생활을 할 땐 말이야~~~” 식사 분위기가 엉망이 됐다. 그 일이 있은 얼마 후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야, 내가 뭘 잘못했냐? 아들 걱정이 돼서 충고를 한 것뿐인데...”내가 말했다. “그래, 억울 했겠다. 넌 아들이 걱정이 돼서 진심 어린 충고를 한 건데 아들 반응이 그렇게 나오니까 얼마나 당황스러웠겠냐. 힘들었지?” “아니, 뭐 힘든 건 아니고~~ 너라도 내 마음을 알아줘서 고맙다~”

사실, 그때 내 입에 맴돌았던 말이 있다. “야, 아들이 얼마나 군대 생활이 힘들었으면 그런 말을 했겠냐? 그냥 마음만 알아주면 되는 거지. 굳이 충고를 하냐? 네가 충고 한다고 해서 군대 생활이 달라질 것도 아니잖아? 그냥 아들 마음만 알아주지~ 왜 그랬냐?” 만약 내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친구는 진심으로 조언한 거였지만 아들에겐 비난으로 느껴진 것처럼, 만약 나도 조언을 했더라면 그 역시 친구에겐 비난으로 여겨졌을 거다. 다행스럽게도 그때 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부탁 받지 않은 조언과 충고는 비난’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 알고 있다고 해서 잘 지켜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조언과 충고의 경계를 자주 넘나든다. 아슬아슬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고 있다. 그럴 때마다 확인한다. 사람들은 나의 답을 원하지 않는다. 조언과 충고는 더욱 더 원하지 않는다. 

‘그저 들어 주기만 해도 된다. 굳이 답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iamcoach@naver.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