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간 주원이가 집에 머물다 갔다. 주원이가 오는 건 반갑지만 그로 인해 잃는 것도 많다. 우선 아침 시간이 희생된다. 내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만의 시간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간이다. 네 시쯤 일어나 앙드레 가뇽의 음악을 틀어놓고 따뜻한 차를 마시는데 그렇게 좋을 수 없다. 명상을 하고, 일기를 쓰고, 오늘 할 일을 계획한다. 내 본업인 글도 쓴다. 근데 그 시간에 침입자가 나타난다. 바로 주원이다. 아내가 주원이를 안고 내 방에 들어온다.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방긋 웃으며 들어온다. 완전 잠에서 깨어난 모습이다. 뭐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난 모든 걸 포기하고 주원이와 놀아준다. 그뿐이 아니다. 기저귀도 갈아주고, 이유식도 먹여준다. 지루해하면 유모차에 주원이를 태우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졸리면 재워주는데 가끔은 내 가슴 위에서 잔다. 애를 재우다 내가 먼저 자는 경우도 종종 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자는 건 평화의 극치다. 외식도 희생해야 한다. 그렇게 좋아하는 외식을 즐길 수 없다. 주원이 졸릴 시간을 고려해야 하고 장소에도 제한이 많다. 연기 때문에 삼겹살 집엔 갈 수 없고 주차장이 없는 곳도 안 되고 쾌적하지 않은 곳은 피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웬만하면 집에서 먹게 된다. 내 자유시간도 사라졌다. 오전엔 일을 하고 오후엔 소파에 누워 골프를 보거나 영화를 보는 게 큰 낙인데 그걸 못하는 것이다. 주원이 엄마가 주원이 앞에선 아예 텔레비전을 켜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딸이 하지 말라는 데 할 수도 없고 참 답답한 일이다. 그가 있는 일주일 간은 뉴스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정결하던 집안도 엉망이 된다. 애 물건으로 넘친다. 주원이는 혼자 잘 논다. 하지만 기기 시작하면서 늘 애를 관찰해야 한다. 자칫하면 사고를 치기 때문이다.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그래도 주원이는 너무 예쁘다. 기쁨을 전파하는 천사다. 주원이를 데리고 길에 나서면 만나는 많은 사람들은 자동으로 웃는다. 무뚝뚝하던 아저씨도 입 꼬리가 올라가면서 깍꿍을 한다. 눈을 잘 맞추는 주원이는 사람을 빤히 보는데 그걸 눈치 챈 사람들은 대부분 미소를 짓는다. 예쁘다고 하거나 몇 개월이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다. 내가 자주 가는 빵집 주인아줌마는 특히 주원이를 예뻐한다. 늘 애를 안아 보고 말을 건넨다. 한번은 야쿠르트 아줌마에게 뭔가를 사려고 말을 건넸더니 다짜고짜 주원이를 안는다. 평소 센 인상이었는데 애를 안을 때는 완전 인자한 아줌마로 바뀐다. 주원이가 지나가면 사람들 얼굴이 환해진다. 밝은 전구가 켜지는 것 같다. 난 은근 그런 시간을 즐긴다. 그래도 주원이와 노는 건 엄청 힘들다. 세상 모든 일 중 애 보는 게 가장 힘 드는 것 같다. 모든 걸 아이에게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졸려도 졸 수 없고,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 오로지 그의 리듬에 내가 맞춰야 한다. 그래서 힘든 것 같다. 난리법석을 치던 주원이가 일주일 만에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갑자기 고요와 적막이 몰려왔다. 마치 쓰나미가 지난 간 느낌이다. 창을 열고 이불을 개고, 주원이 물건을 정리하고, 오랜만에 조용히 앉아본다. 이 시간이 참 좋다. 주원이랑 노는 것도 좋지만 주원이가 떠난 후의 시간도 참 좋다. 손자가 오면 반갑지만 가면 더 반갑다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주원이가 간 후 이틀이 지났다. 또 보고 싶다. 아내와 주원이 얘기를 한다. 주원이는 지금 뭐하고 있을까? 왜 나 같은 아저씨에게 그런 감정이 생길까? 생전 누군가를 보고 싶어하지도 않고, 그리워하지도 않는 난데. 혼자 계신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도 하지 않는 나인데. 친구들한테도 안부인사도 잘 하지 않는데. 내가 왜 이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만큼 주원이를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쁜 것도 있지만 주원이는 반색을 한다. 진심으로 반가워한다. 세상에 나를 그렇게 반가워하는 사람이 흔한가? 그래서 더 주원이가 생각나는 것 같다. 주원이는 한결같이 나를 만나면 타잔 소리를 내면서 반색을 한다. 손을 내 쪽으로 쭉 뻗으며 뭐라고 얘기한다. 난 이렇게 해석한다. “어서 오세요. 할아버지, 보고 싶었어요. 저를 안아주실 거죠? 저도 할아버지가 보고 싶었어요.”내가 생각하는 좋은 관계의 절정은 바로 할아버지와 사랑하는 손자와의 관계다. 정말 순수하고 고귀하다. 사랑으로 가득 찼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반가워 뽀뽀를 하고 볼을 비빈다. 뽀뽀를 요구하면 침으로 가득한 입으로 내 뺨에 비빈다. 그때 난 절정에 오른다. 가슴 깊은 곳에서 환희의 노래가 들리는 것 같다. 오늘은 화요일인데 벌써 금요일이 기다려진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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