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서 챙겨라? 아랫사람은 ‘뭘 어떻게’가 궁금하다 (조선경제 2012년 11월 29일)
많은 상사가 부하 직원이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듣는다고 답답해한다. 잘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엉뚱한 보고서를 들고 그것도 마감시간 임박해서 나타나는 부하 앞에서 상사들은 화가 나고 실망한다. 왜 그럴까? 상사와 부하는 경험의 차이가 있고 의식수준이 다르다. 그래서 앞에선 고개를 끄덕여도 사실 상사가 말하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업이 해외에 진출하면 현지 외국인 직원과의 의사소통은 더 만만치 않다.
◇ 애매한 표현이 의사소통 오류 원인
대기업 해외 법인장을 코칭할 때다.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과 일하는 게 너무 답답하다고 호소하기에, 그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말을 속 시원하게 해보라고 했더니, “제발 좀 알아서 챙겨라”고 쏘아붙였다. 안타깝게도 외국어로 바꿔 말하기 어려운 표현이 ‘챙긴다’는 말이다. 게다가 ‘알아서’라는 엄청난 의미를 함축한 이 뜻을 어떻게 전달하겠는가? 우리가 자주 쓰는 함축적인 언어는 그 밖에도 많다. ‘잘 모셔라’ ‘부탁한다’ ‘눈치껏 해라’ ‘잘 좀 해라’ 등등. 서로 의미를 잘 아는 것 같은 그런 말들이 실은 주관적인 잣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이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의 오류를 가져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Hall)은 저서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에서 고(高)맥락(High Context) 문화와 저(低)맥락(Low Context) 문화의 차이를 설명한다. 저맥락 문화는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직설적이고 명료하며, 자기 의사를 말과 문자로 분명히 밝힌다. 반면 고맥락 문화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은 우회적이고 애매하며, 언어에 담긴 뜻이 함축적이고, 상대방과의 관계를 고려한다. 의사소통에서 의미 전달이 말이나 문자에 의존하는 부분이 클수록 저맥락 문화이고, 명시적인 표현이 적을수록 고맥락 문화다.
◇’말귀 알아먹고 처리’ 몸에 밴 한국
일반적으로 동양은 서양에 비해 고맥락의 문화다. 그래서 솔직하고 정확하며 직설적인 서양인의 의사소통 방식이 동양인에게는 무례하게 받아들여지거나 대응하기가 당황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같은 서양이라도 북유럽은 남유럽보다 상대적으로 저맥락 사회라고 한다. 아마 남유럽의 그리스 사람이 요리법을 알려주면서 소금을 ‘조금’ 넣으라고 하면 북유럽의 핀란드인들은 반문할 것이다.“ 몇 그램(g)이요?”
우리의 고맥락 문화는 상세하게 만들어진 업무 매뉴얼을 무력화시키기도 한다. 정해진 프로세스를 일일이 따지기보다 상황과 맥락에 따라 처리하는 게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친밀할수록 더 우회적이고 애매한 편이다. 배우자에겐 아예 말하지 않아도 내 맘을 알아주길 기대한다. “바쁜데 뭐하러 오냐?”는 부모님의 말씀은 오지 말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그런 줄 알았다간 불효자가 되기 쉽다. 거래처에 인사 좀 하고 오라는 상사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정말 인사만 꾸벅 하고 왔다가는 눈치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상담 전문가인 지인(知人)이 한 말이다. 스승 댁을 방문했더니 사모님이 차를 내오면서, “김박사, 자네 상담 오래 했다면서?”라고 물었다. 이 말에 지인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사모님. 요새 무슨 답답한 일 있으세요?”라고 대답했단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 질문에 “네, 한 20년 했지요.대학에서도 가르치고요”라면서 자기 얘기를 늘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인은 ‘이분이 왜 지금 내가 상담한 것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맥락으로 파악했던 거다. 이런 게 내공이 아닐까?
◇분명한 메시지 전달, 경청이 필요
사람들의 말의 맥락을 듣다 보면 놀라운 것도 발견된다.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노력 중인 기업에게서 의뢰를 받아 내부 회의를 관찰한 적이 있다. 회의에서 오가는 말 중 상당 부분이 “나(우리 부서)는 잘못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특징이 발견됐다. 성과를 내는 과정에서 나(우리 부서)는 최선을 다했고 할 만큼 했다, 즉 내 잘못은 없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시간과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게 놀랍고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현명한 CEO라면 자신의 면책을 위한 얘기를 길게 해야 할 필요를 없애고, 자유로운 토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조성했을 것이다.
고맥락 문화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커뮤니케이션에는 전달자(sender)와 수용자(receiver)가 있다. 전달자의 입장에서 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말이나 글을 분명하게 잘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함축적인 얘기의 맥락 수준을 좀 낮추어야 한다는 뜻이다.귀찮더라도 차근차근 상대의 의식 수준에 맞게 얘기해주는 게 필요하다. 반면에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상대가 전달하는 메시지의 맥락을 잘 헤아리는 ‘맥락적 경청’이 필요하다. 맥락적 경청이란 말만 듣지 않고 말의 이면에 깔려있는 상대방의 의도나 감정, 욕구까지 헤아려 듣는 것을 말한다.
<효과적인 소통 방법 5가지>
① 대화하며 딴 일 말라
② 상대의 욕구 살펴라
③ 비유와 쉬운 말을 써라
④ 지시 되물어 확인하라
⑤ 서로 질문 주고받아라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는 권력 격차에 따른 거리감이 항상 존재한다. 조직에서는 그런 거리감을 좁히고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질문하고 토론하는 문화를 장려하고 이끌어야 한다. 그게 부족하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함축적인 담론으로 CEO(최고경영자)가 훈시를 마치면 그 말을 해석하느라 임원들이 모여서 다시 회의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는 게 우리 기업의 현실이다. 고맥락 문화에서 특히 유의해야 할 커뮤니케이션 팁을 정리해 본다.
첫째, 주의를 기울여서 들어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분위기를 이끌기 위해서는 높은 사람일수록 경청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 듣는 상황에서 멀티태스킹은 금물이다. 회의 자료를 넘겨보면서 컴퓨터 화면이나 스마트폰을 조작하면서 듣는 것은 안 듣겠다는 표시나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이 그렇게 나오면 말하는 사람의 머릿속도 함께 산만해져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초점을 잃어버린다.
둘째, 맥락을 파악하라. 말 이외의 표정과 어조 등을 주의 깊게 살피며 말만이 아닌, 그 말에 깔려있는 욕구와 감정, 의도를 헤아릴 필요가 있다.“ 야근이 많아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직원의 말을 그냥 들으면 불평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맥락을 들으면 이렇게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인정(認定)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 인정 욕구에 답하는 것이 바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셋째, 상대방의 수준에 맞추어 말하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뛰어난 커뮤니케이터들은 쉽고 평이한 언어를 쓴다. 현학적이고 함축적인 말을 자제하고, 상대방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활용하고 생동감 있게 강조점을 부각시켜라. 유머까지 활용하면 최상이다.
넷째, 지시사항은 그 자리에서 확인하라. 부하 직원이 지시 사항을 효과적으로 이행하고 원하는 결과물을 가져오도록 하는 한 가지 간단한 처방이 있다. 부하 직원이 지시를 받고 방에서 나가기 전에 어떻게 지시사항을 이행하려고 하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직원의 얘기를 들어보면 상사가 말한 것과 부하의 이해 수준의 차이를 즉각 확인하게 되고 바로 보충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3분이면 해결되는 좋은 솔루션이다.
다섯째, 좋은 질문을 활용하라. 들을 때도 말할 때도 상대방의 주의를 집중시키고 공유 수준을 높이려면 일방적으로 듣거나 말하기보다는 질문하고 대답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