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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梨)에 복분자를 묻히고 불에 졸여서 조리한 걸 먹은 적이 있다. 맛이 깔끔하고 특이했다. 옆 사람이 말했다. “사람이든 과일이든 빈틈이 있어야 쓰임새가 많아!” 무슨 말인지 물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배는 빈틈이 많기 때문에 다른 재료들을 잘 흡수한다. 그래서 배는 여러 가지 요리에 혼합재료로 잘 쓰인다. 쓰임새가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조금 어수룩하고 빈틈이 있어야지 다른 사람들이 좋아한다. 자기 생각으로만 꽉 차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없다.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

양자물리학에 의하면 원자의 대부분이 빈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수소원자의 핵을 농구 공 크기로 비교하면, 전자들은 약32킬로미터 주변에서 그 주위를 돌고 있고, 핵과 전자 사이는 빈 공간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눈으로 인식하는 물질은 실제로는 빈 공간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거다. 양자물리학에 의하면, 모든 물질은 틈을 매개로 할 때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관계도 빈 공간이 있어야 잘 유지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빈 공간이 바로 마음의 여유다.

요즘 매우 어려운 사람을 코칭하고 있다. S기업 K전무다. 자신이 왜 코칭을 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K전무가 생각하는 코칭이 뭔지 물었다. 그는 잘난 사람이 못난 사람에게 한 수 가르쳐주는 게 코칭이라고 했다. 만약 코칭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불편할 수밖에 없겠다고 공감해줬다. 그리고 코칭의 정의와 코칭의 프로세스, 코칭에서 다루는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K전무는 알았다고 했다. 그렇게 코칭이 시작됐다. 그런데 두 번째 만났을 때 K전무는 원래의 입장으로 돌아가 있었다.

오늘 코칭에서 무얼 다루고 싶은지, 어떤 걸 해결하고 싶은지 물었다. K전무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제가 왜 코칭을 받아야 되나요?” 답답했다. 지난번에 나누었던 대화가 원점으로 돌아가 있었다. 같은 부서의 상무가 알려줬다. “K전무가 원래 저렇게 고집스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진급하고 나서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반드시 최고의 성과를 내야한다고 조바심 내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이미 K전무에겐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답답합니다. 저러다가 건강도 망치고 저 자리도 유지하기 힘들 겁니다.”
다음 번 코칭을 시작할 때 말했다. “저는 오늘 순전히 전무님을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전무님 마음의 공간을 저에게 내어 주십시오.” K전무는 깜짝 놀랐다. “예? 마음의 공간이라고요?”

평상심이 곧 도(道)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일상생활의 마음, 평온한 마음’ 등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평상심의 본래 뜻은 ‘인위적인 조작이 없는 마음, 분별 시비가 없는 마음, 편견과 고정관념에 따른 차별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시비분별을 없애는 최고의 방법은 명상이다. 명상을 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온갖 망상을 알아차릴 수 있다. 명상을 계속하면 마음에 커다란 공간이 생긴다. 이 공간은 어떤 생각도 받아들일 수 있고, 버릴 수도 있다. 생각의 취사선택에 자유가 생긴다. 이때 비로소 시시분별이 없어진다.

빈틈이 있는 마음, 공간이 있는 마음을 일컬어 ‘마음의 여유’라고 한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즐겁게 해낼 수 있다.
N기업 P상무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면담을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원들은 어려운 일이 있으면 P상무를 찾는다고 했다. 공식적인 면담이거나, 비공식적인 면담이거나 P상무는 인기가 좋다. 이유를 물었다. P상무의 대답이다. “저는 직원들이 상담하러 오면 편안하게 들어주려고 노력합니다. 가급적이면 직원들이 하는 말을 끝까지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들어주면 직원들은 매우 좋아합니다.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제가 직원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했다. “상무님, 들어준다는 건 유일한 선물이 아니라 최고의 선물입니다.”

얼마 전에 L그룹 H상무 코칭을 끝냈다. H상무를 처음 만났을 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얼굴은 피곤에 찌들어 있었고 업무는 바빠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쉽게 화를 내고 짜증을 냈다. 직원들은 H상무를 싫어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를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H상무는 명상을 시작했다.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기 전에 먼저 명상을 했다. 처음 일주일에는 5분, 다음 일주일에는 10분, 그다음 일주일에는 15분, 그다음엔 20분씩 명상했다. 명상을 한지 두 달이 지나자 H상무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짜증이나 화를 내지 않는 건 물론이고 표정이 편안하다. 이젠 마음에 커다란 공간이 있어서, 자신의 생각이 일어나는 걸 쉽게 포착하고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H상무가 말했다. “코치님! 명상을 했더니 마음에 빈틈이 생겼습니다. 이 빈틈으로 직원들의 생각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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