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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제일 깐깐한 과장과 일했다. 한 번에 결재를 받은 기억이 없다.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옆자리의 H대리는 더 혹독하게 당했다. 어느 날 우연히 과장이 퇴근하기 전에 데스크 다이어리에 메모하는 걸 봤다. 퇴근하기 전에 과장의 메모를 확인했다. 다음날 챙겨야 할 결재 리스트였다. 메모를 보니 내 업무도 있었다. 퇴근하기 전에 작업을 마무리해서 과장 책상위에 올려놓고 퇴근했다. 다음 날 과장은 흔쾌하게 결재를 해줬다.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했다. 곰곰이 생각했다. ‘과장은 왜 이렇게 쉽게 결재를 해줬을까?’ 그날 이후 퇴짜당하는 일 없이 거의 한 번에 과장의 결재를 받았다.

과장은 자기가 찾기 전에 미리 보고하는 건 약간 부족해도 바로 결재한다. 가져오라고 할 때 가져 오는 건 한 번 정도 퇴짜를 놓는다. 반면에, 찾을 때까지 안 돼 있는 일은 혹독할 정도로 챙긴다. 여러 번 퇴짜를 맞고도 결재받기 어렵다. H대리는 과장이 챙기기 전에 먼저 보고하는 법이 없었다. ‘깜박했습니다. 조금 덜 됐습니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과장에게 결재를 잘 받는 비결은 타이밍이었다. 조금 부족한 점이 있어도 미리 가져가면 자기가 보완해서 마무리해준다. 이럴 때는 정말 인심이 후하다. ‘정말, 저 사람이 그 사람이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자기가 찾을 때까지 아무런 진척이 없으면 혹독한 사람으로 돌변한다. 나는 이 비밀을 빨리 알아차린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다.

D그룹 CFO에게 들은 얘기다. “직원들이 일하는 걸 보면 정말 답답합니다. 무슨 일이 터지면 곧 바로 가져오지 않고 곪아터질 때까지 뭉개고 있다가 폭발 일보직전에 가지고 옵니다. 그러면 정말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미리 가져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 정말 답답합니다.” 직원들은 왜 곧 바로 보고하지 않는지 물었다. “자신이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하는 거지요. 그러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겁니다.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편으론 책임감 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타이밍입니다. 타이밍을 놓치면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방법을 물었다. ‘미리 챙기는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강의시간에 대체로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한다. 혹시 강의 기자재가 미비하거나 문제가 있어도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미리 나누면서 친밀감도 생기고,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한다. 강의에 많은 도움이 된다. 담당자로부터 ‘일찍 오는 사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는 신뢰를 덤으로 얻는다. 예전에 천안에 강의하러 갔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교통이 거의 마비됐다. 1시간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교통 혼잡에도 불구하고 5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패션회사에 근무했을 때다. K디자인실장은 매우 유능했다. 다른 디자인 실장과 달리 항상 여유가 있었고 실적도 좋았다. 비결을 물었다. “패션은 타이밍의 예술입니다. 남들보다 하루라도 늦게 상품이 나오면 그 시즌은 고전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남들보다 늦으면 안 됩니다. 미리 챙겨야 됩니다.”
어떻게 하면 미리 챙길 수 있는지 물었다. “먼저, 자신의 일에 정통해야 합니다. 일 년 전체를 놓고 보면 중요한 일과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일 년을 전체로 놓고,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리스트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중요하지 않더라도 미리 챙기지 않으면, 나중에는 커다란 문제가 생깁니다. 임박해서 챙기면 원가도 올라가고 제품의 질도 떨어집니다. 전체를 예측하고 미리 챙기는 게 관건입니다.” 자신의 일에 정통하고 일 년 전체를 놓고 스케줄을 챙기는 게 성공비결이라고 했다. K실장이 말했다. “미리 챙기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일에 대해 정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 하고 싶은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업무 관리는 단순한 시간 관리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직장생활의 비결은 미리 챙기는 거다. 그러나 그건 단순한 시간 관리의 문제가 아니다. 얼마나 더 잘하고 싶은지, 열정의 문제다. 어떻게 하면 더 쉽게 더 효과적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자나 깨나 생각하는 ‘간절한 마음’이 바로 열정이다. 직장생활의 비결은 시간관리가 아니라, 열정관리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iamcoach@naver.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