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0대 초반의 직장인을 코칭한 적이 있다. 그는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월급은 쥐꼬리보다 적은데 일은 태산같이 많다고 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아서 하루를 사는 게 지옥이라고 했다. 그렇게 힘든데 왜 직장생활을 하는지 물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앞으로 5년 동안 이런 생활이 계속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물었더니 화를 냈다. “저보고 앞으로 5년이나 더 이런 생활을 계속하라는 겁니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어쩔 수 없이 직장생활을 한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들에게 물었다. ‘직장 생활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인가?’ 그들은 그게 엄연한 현실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따져보자. 자기는 하기 싫은 데 억지로 등 떠 밀려서 직장 생활을 하는 건가?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착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등을 떠 밀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일을 하는 대가로 경제적 보상을 받고 경제활동을 통해 가족에게 행복을 제공한다. 이게 우리가 직장생활을 하는 목적이다. 그 과정에서 보람을 느끼고 사회에 공헌하고 기여하기도 한다. 자기가 원하는 수준보다 적은 대가를 받는다고 해서 원래의 목적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자기가 제공하기로 생각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노동을 제공한다고 해서 또한 자신의 목적이 사라지진 않는다. 사정은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직장생활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인가? 무엇이 우릴 그렇게 힘들게 하는가? 그건 바로 두려움 때문이다. 혹시 잘릴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고 은퇴 후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두렵다. 그래서 더 불안해진다. A부장은 워커홀릭이다. 아침 7시 경에 출근해서 10시쯤에 퇴근한다. 직장에서 무려 15시간을 보낸다. 집에 도착하면 11시다. 대충 정리하고 12시에 잠들면 다음날 5시에 일어난다. 술이라도 한 잔 하는 날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출근한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이런 일상을 반복한다. A부장은 자신이 ‘시지프스의 형벌’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퇴근 후에 친구를 만나는 건 사치다.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자기개발을 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A부장은 직장생활에선 행복이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한다. A부장은 정글 같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은 어쩔 수 없이 뒤로 미루어야 된다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다. A부장이 이렇게 생각하는 건 두려움 때문이다. 두려움이란 욕구의 다른 표현이다. 동전의 양면과 같다. 얼마 전에 프레젠테이션 때문에 불안 해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왜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물었다.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할까봐 두렵습니다.” 그렇다. ‘불안’은 ‘욕구’의 다른 이름이다. 잘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잘하고 싶은 욕구가 없다면 애초에 불안하지도 않는다. 성과 때문에 강박에 사로잡힌 D부장을 코칭한 적이 있다. D부장은 노심초사하면서 일했다. D부장에게 물었다. “불안과 강박을 느끼는 이유가 뭡니까?” “잘하고 싶은 욕구 때문입니다.” 또 물었다. “불안과 강박의 근원에 있는 욕구를 동시에 보면 어떻게 될까요?”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저는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가족의 행복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가족과는 전혀 시간을 보내지 않고 있습니다. 또 자신의 성장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 정작 스스로를 위한 시간은 전혀 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건 스스로를 속이는 겁니다. 자신에 대한 배반입니다.” ‘직장은 인간이 찾아낸 최고의 놀이터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글을 읽고 난 후에 내 삶은 변했다. 그전까지 일은 내겐 의무였다. 무조건 잘해야 하는 대상에 불과했다. 열정적으로 일했지만 그래도 일은 일이었다. 즐거움은 덜했다. 그러나 이 글을 읽은 후에 변했다. 죽기 살기로 일하는 것에서 벗어나 놀면서 일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직장은 놀이터가 됐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놀이라고 생각하니 즐겁게 일할 수 있게 됐고 성과는 덤으로 따라왔다. 우리는 직장생활을 통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과정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낀다. 게다가 동료들과 관계를 통해 즐거움을 주고받는다. 서로 위하고 돕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직장은 죽기 살기로 일해야 하는 정글이 아니라 나, 너, 우리가 함께 노는 것처럼 일하는 즐거운 놀이터가 될 수 있다. 당신은 어떤가? 지금 정글에 있는가, 놀이터에 있는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iamcoach@naver.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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