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공부를 하던 초창기에 가족들과 대화 중 종종 질문을 하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들은 “나 그 질문 왜 하는지 다 알아, 그냥 하던 대로 해” 하면서 웃어 버려, 나의 가족 코칭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장성한 아들과의 대화는 잘 나가다가도 훈계 혹은 잔소리로 되어버려 언짢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들이 해외에 머물게 되어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우리의 대화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미국에 있는 아들을 방문하여 일 주 남짓 함께 지내다 떠나오기 전날이었다. 아들이 연구실에서 늦도록 논문과 씨름하고 담당 교수님과 논의 중 심한 언쟁을 한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와 상대방의 부당함 때문에 무척 속상하고 화가 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한 상황에 놓인 아들이 참 안쓰러웠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교수님이신데…… 네가 좀 참고 잘 해드렸어야지” 란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참으며 위로만 했다. “너 정말 속상했겠다.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그 동안 어떻게 견디지? 주말 동안 아무 생각 말고 그냥 푹 쉬어.” 아들이 그 상황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하고 해법을 찾아가도록 진지한 대화를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예전처럼 훈계 모드로 흘러 상처에 더 흠집을 내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다음날 서로 좋은 마음으로 작별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는지도 모른다. 아들 집을 떠나 한 도시에서 잠시 머물고 다른 도시로 가는 비행기 안이었다. 비구름에 가려 천지가 안 보이는 공포의 이륙 후,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나타나고 그 아래 멀리 산야도 눈에 들어왔다. 거대한 산들과 호수, 도시가 작은 정원처럼 느껴지며,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아들이 또 생각났다. 노트북을 꺼냈다. 보낼 지는 모르겠지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얘야, 주말을 어떻게 보내고 있니? 월요일 아침이 다가오고 있는 일요일 오후는 썩 즐겁지 않지? 더구나 지난 주 교수님과의 일로 아직도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겠니. 교수님과 언짢았던 네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엄마도 덩달아 속상하고 교수님이 야속하고 마음이 안 좋아 네게 별 다른 얘길 못했어. 그리고 또 판에 박은 것 같은 잔소리만 늘어놓아 너한테 핀잔 들을까 겁도 났지. 지금 비행기 안에서 넓디 넓은 땅덩어리를 한눈에 쫙 내려다보며, 코치로서 내가 가끔 사용하는 질문 하나가 떠올랐어. 잘 풀리지 않는 문제들 혹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느라 고심하는 고객에게 헬리콥터를 타고 점점 높이 올라가는 상상을 해보라고 요청하는 거야. 그러다가 자기 자신과 주변의 이해관계자들, 그들과의 상황을 내려다 보며,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물어보지. 나무가 아니라 숲 전체를 보아야 여러 길이 보이듯이 말이야. 마치 구글 지도를 클로즈업하면 골목길까지 상세하게 나오지만 좀 멀리 있는 곳들은 모두 숨어버리고, 줌을 하면 그곳들이 튀어나오다가 마침내 세계 지도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것과도 같은 이치야. 지금 엄마의 마음에서 나와 코치의 자세로 네게 물어봐도 될까? 너도 지금 수 킬로미터 상공에 있다고 상상해 볼래? 거기서 네가 살고 있는 도시가 보이지? 점 하나보다도 작지 않니? 네가 일하는 연구소도 보여? 그 속에서 일하는 너와 동료들, 교수님, 그리고 지난주 일어났던 상황을 무심코 5분 동안 내려다보렴. 자, 이제 다음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해 볼래? 아주 진지하게. (1) 무심코 내려다보면서 어떤 느낌이 들었어? (2) 지난주 교수님이 제기한 이슈들은 어떻게 다가와? (3) 교수님에 대해서 지금 어떤 느낌 혹은 생각이 들어? (4) 교수님도 주말을 보낸 지금쯤 너에 대해 어떤 느낌이나 생각이 드실까? (5) 몇 달 후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을 네가 지금 상황을 겪고 있는 네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 (6) 월요일 아침에 교수님을 어떻게 대하고 싶어? (7) 위의 질문들에 대답하고 난 지금 기분은 어떠니? 얘야, 벌써 착륙 준비를 한다는 방송이 나오는구나. 비행기 하강이 시작되었는데 아까 이륙 때처럼 다시 회색 구름 속으로 들어가 한치 앞도 안 보여. 그런데 그 때의 불안감은 이제 느껴지지 않아. 한번 겪고 보니 별거 아닌 걸 알아서겠지. 하긴 세상사도 모두 지나고 보면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어. 삶의 여정에서 수백 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어려움 중 하나뿐일 때가 대부분이었어. 나는 죽을 만큼 괴로웠는데도 말이야. 얘야, 잠시 막혔던 물길에 작은 구멍 하나를 뚫어 물이 잘 흐르듯 이번 일도 그렇게 흘러가길 간절히 바란다.” 비행기에서 내려 와이파이가 연결되자마자 아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답장을 받지는 못했지만 교수님과 잘 마무리하고 다음 커리어를 시작한 걸 보니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엄마와 코치의 본능과 직감으로 다음은 대면대화가 가능하리라 기대하고 있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usoonsuh@gmail.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PREV [고현숙] 직장 내 삼국지
-
NEXT [김종명] 그래도 믿을 건 사람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