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유세를 거의 들은 적이 없다. 그들의 주장은 알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뉴스에 나오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듣는다. 대부분 목소리를 높인다. 내용은 별로 없고 진정성도 떨어진다. 그저 이상하게 개조한 차를 타고 소리 높여 외칠 뿐이다. 이들의 유세를 보자면 싸구려 스피치학원이 연상된다.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칩니다. 착하게 살자구 어쩌구.” 난 그들의 속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도대체 왜 저렇게 내용도 없는 걸 소리 높여 외칠까? 저런 연설을 듣고 저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지는 사람이 있을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난 쓸데없이 목소리를 크게 하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왜 차분하게 얘기해도 될 것을 그렇게 목소리를 키울까? 아마 말의 알맹이가 없으니까 그걸 큰 소리로 커버하려는 것 일게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차분한 목소리로 얘기해도 될 것을 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득력이 떨어질 때 설득력을 높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강사 혼자 흥분한 그런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저렇게 혼자 흥분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마음이 불편했다. 청중은 아무 감동이 없는데 어떻게 혼자서 저렇게 감동을 할 수 있을까? 청중으로 앉아 있던 나는 수시로 그런 의문이 생겼다. 저 사람은 누구일까? 저 사람이 주장하는 내용이 무엇일까? 무슨 근거로 저렇게 자신있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이 흥분할수록 나는 점점 냉정해졌다. 자신은 흥분했지만 관중들 반응이 차갑자 그는 수시로 “끝내주지 않아요,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재미있지요?” 하면서 동의를 이끌어내려고 애를 썼다. 청중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거나 동의를 표시했다. 난 그 날 강사가 흥분할수록 청중은 차가워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혼자 그렇게 흥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코미디란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난 복면가왕 같은 노래 프로를 좋아한다. 복면을 쓰고 나와서 그런지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아무 선입견 없이 노래를 부르고 즐긴다. 정말 한국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많다. 이제는 밑천이 떨어질 때도 됐지만 끝도 없이 대단한 가수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가수들 노래도 좋지만 거기 나온 게스트들의 반응도 볼거리이다. 근데 매번 너무 심하게 감탄을 하는 모습은 마음에 좀 걸린다. 물론 나처럼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것과 현장에서 실제 보는 것과는 감흥이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저렇게 건건이 사람들이 감탄을 할 수 있을까? 매번 입을 쩍 벌리면서 놀랄 수가 있을까? 난 다소 과장이 섞여 있다고 생각한다. 남들 눈을 의식해 실제보다는 더 감탄한 것처럼 리액션을 보이는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좀 넘친다고 생각한다. 난 감정이 과한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호들갑을 떠는 것, 엄살을 부리는 것, 별거 아닌 일에 흥분하는 것, 침소봉대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감정이란 절제할 때 더 빛이 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는 가수 조용필에게 배울 게 있다. 그가 가요활동 25년 기념 공연을 앞두고 일간지 기자와 대담을 가졌다. 조용필씨는 그의 음악 25년이 후회의 연속이었다는 말을 했다.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기자의 질문에 곡 스타일은 둘째고, 노래할 때 감정을 지나치게 발산한 것에 대해 불만이 많고 그런 것들이 모두 후회가 된다는 말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은 노래할 때 감정을 굉장히 절제합니다. 영원히 들을 수 있는 노래는 감정을 누르고 눌러, 내면에서 우러나야 한다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감정을 안에 숨기는 것, 표현하고자 하는 걸 오히려 꽁꽁 싸서 가슴속에 안고 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안 된다. 노래를 하거나 시를 쓸 때도 지나친 감정표현은 피해야 한다. 처음부터 가슴이 찢어진다느니, 미쳐 돌아가시겠다느니 하면 거부감부터 생긴다. 글도 그렇다. 최상급이나 너무 많은 꾸민 말은 피해야 한다. 맛난 음식일수록 간이 적다. 간이 심하다는 것은 원재료가 안 좋기 때문이다. 좋은 음식은 원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다. 감정도 그렇다. 감동이란 것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담담하게 얘기해도 감동할 얘기면 다 감동을 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덤덤한 것이 세상이치이다. “일류는 자신은 무심하게 부르지만 듣는 이는 감동한다, 이류는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 감동한다, 삼류는 부르는 이 혼자 감동한다.” 가수 이승철의 말이다. “독자를 울리려면 필자는 울면 안 된다. 자신이 다 울어버리면 독자들을 울 여지가 없다. 감정의 과잉보다 절제가 중요하다.” 허영만의 말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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