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기주의’를 뜻하는 ‘사일로(Silo)’라는 말이 있다. 원래 곡식저장을 위해 깊게 판 구덩이를 이르던 말인데, 주위와 소통 협력하지 않고 자기 틀에 갇히는 현상을 말한다. 이슈가 생기면 관할 부서가 어디인지만 따지는 것도, 전체 효율을 위한 조직개편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것도 사일로 현상이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가 미증유의 공포를 드리우던 때 런던정경대(LSE)를 방문한 엘리자베스2세 영국 여왕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여기 세계 최고의 석학들이 모여 있는데 왜 아무도 이런 위기를 예측 못했나요?” 이 간단한 질문에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금융시스템이 세분화되고 파생상품이 속출했지만, 거시경제학자들은 금융통계를 주로 볼 뿐, 세밀한 금융상황은 무시했다. 규제기관은 개인은행을 감시했지만 비은행권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 결과 금융시스템이 채무 과잉상태에 빠졌다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일로 이펙트’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사일로를 넘어서려는 노력 기업에서 사일로 현상이 기승을 부린다. 일본의 소니는 효율성을 위해 사업부서를 19개로 세분화하고 사업부별로 대차대조표에 책임지게 했는데, 이게 완전 악수였다. 사업부의 사일로 현상으로 사업부 이기주의가 만연했다. 일례로 디지털 음악이 나오는 시기에 소니뮤직사업부는 음반 및 CD 판매가 줄어들까봐 소비자 가전부와 협력하지 않았다.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경영자가 협력과 네트워크 정신을 강조하면서 ‘소니 유나이티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한 번 자리 잡은 관행은 완고해서 바뀌기가 어려웠다. 이와 반대로 애플은 사일로 때문에 기존 제품의 아이디어와 과거의 성공을 지키려는 마음이 자리잡을까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아주 면밀한 통제를 통해 모든 팀이 단일 손익구조 아래 통합적이고 유연한 하나의 조직이 되도록 만들었다. 아이팟과 아이튠즈 같은 획기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회사 전체가 하나의 손익 계정으로 운영되면서 내부의 경계를 넘나들며 협력했기 때문이다. 정부 부문도 마찬가지다. 미국 시카고 경찰국은 데이터 전문가들을 고용해 각 부서별로 축적되어 있던 방대한 데이터, 그전까지는 아무도 통합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았던 각종 정보와 데이터를 모아 그것간의 연관관계를 분석하여 획기적인 성과를 이룬다. 상당히 예측력이 높은 범죄발생 가능성 모델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에 맞게 경찰을 배치, 파견함으로써 범죄율 자체를 낮추는 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외부인의 시각을 가진 내부인이 되라 페이스북도 ‘전문가 집단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다. 한 경력직원으로 입사한 사람이 실수로 전사 이메일 시스템을 다운시키는 사고를 쳤다. 그는 당연히 바로 해고될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다른 여러 부서에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한 관심과 조언, 처방들이었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조직 전체 차원으로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걸 중시하는 문화 덕분이다. 그럼 사일로를 없애고 소통하고 협력하는 조직이 되기 위해 무엇부터 풀어야 할까? 책 「사일로 이펙트」의 저자 질리언 테트는 ‘외부인의 시각을 가진 내부인’이 되라고 조언한다. ‘사일로’에 갇힌 이들은 문제를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필드 스터디를 와서 토착민을 관찰하는 인류학자처럼,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틀과 분류체계를 낯설게 보고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사적 과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팀을 활성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러 부서에서 인력을 뽑되, 스컹크조직처럼 기존 관료체제로부터 보호하여 자율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각 부서에 단절된 시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인력을 한 부서에 너무 오래 두기보다는 주기적으로 순환근무를 시키는 것도 사일로 극복에 도움이 된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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