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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들에게 ‘동기는 친구가 아니라 적’이라고 가르치는 선배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의 말은 이랬다. ‘지금은 동기가 친구처럼 여겨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경쟁하게 되고, 같은 자리를 놓고 승진 싸움을 하게 된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동기는 필연적으로 경쟁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동기는 친구가 아니라 적이다. 이게 바로 동기의 운명이다.’

신입사원 때의 일이 기억났다. 신입사원 연수 때 강사가 똑같은 말을 했었다. 우리 동기들은 충격을 받았다. ‘동기가 아니라 평생의 적이라니?’ 동기들은 술자리를 가졌다. 우린 승진을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평생 적으로 살지 말자. 친구처럼 잘 지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져버렸다. 동기들을 적으로 생각하고 사사건건 경쟁하고 비협조적으로 행동하는 동기가 여러 명 생겼다. 그래서 동기모임도 잘 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엔 동기들과 경쟁적으로 일하던 친구들이 먼저 승진을 하는 듯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이 말은 틀린 말이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자리가 적어진다는 건 맞다. 그러나 동기가 적이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동기를 오직 경쟁자로만 대하던 친구들은 동기 모임에도 나오지 않고 직장생활을 외롭게 했다. 그들에게 직장은 오직 승진의 열매를 먼저 따먹어야 하는 정글에 불과했다. 그러나 끝까지 동기들을 친구처럼 여기던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는 서로 도와주고 경조사를 챙기면서 동고동락했다. 처음엔 다소 승진이 늦은 듯 보였지만 세월이 흐르고 보니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전쟁터와 같은 정글에서 직장생활을 했고, 어떤 사람은 서로 돕고 위하는 따뜻한 분위기 속에서 일했다는 것이다.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우리 동기들은 아직도 만나고 있다. 서로 경조사를 챙기고 연말모임도 함께 한다. 함께 인생을 살아온 30년 친구가 되어 있다. 

동기뿐만 아니다. 동료들을 경쟁자로 생각하고 적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 같아서 안타깝다. 동료들을 자신의 적이라고 여기는 순간, 직장생활은 가시밭길이 되고 만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다른 동료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사사건건 견제한다면 어떻겠는가? 그는 매사 괴롭게 일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동료들의 지지와 도움을 받지도 못할 것이다. 동료들을 밟고 넘어가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면서, 죽기 살기로 일하는 사람을 우린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미가 없는 사람, 자신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직장에서는 힘든 일이 정말 많다. 그럴 때마다 주위에 적밖에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 나가겠는가? 

동료들을 한정된 승진 자리를 놓고 경쟁해야 하는 경쟁자로 생각하는 건 빈곤의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대방이 가지면 내가 가지지 못한다는 거지근성에 다름 아니다. 직장에는 승진과 성과 외에도 다른 것들이 많다. 동료들을 함께 성장하는 동반자로 생각하는 풍요의 심리에서 보면 직장은 즐겁게 일하는 곳이 될 수 있다. 

이는 살벌하고 치열한 협상의 세계에서도 이미 증명되었다. 예전엔 자기만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협상기법을 연구했다. 이른바 협상 1.0의 시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람들은 알게 되었다. 자신의 협상 기술이 뛰어날수록 자신과 거래했던 상대방들은 손해를 봤고 그 거래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자신이 더 많이 가질수록 거래는 깨졌다. 그러면 자신은 또 새로운 거래처를 발굴해야 했다.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었다. 조금 더 많이 가지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배보다 배꼽이 컸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파이를 더 크게 만들어서 서로 많은 것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협상 2.0 개념이 탄생했다. 그러나 서로 많이 가지겠다는 생각은 없어진 게 아니어서 이 방식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지금은 협상 3.0의 시대다. 어느 일방이 더 많은 것을 가지는 게 아니라,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어야 거래가 오래 지속된다는 게 협상 3.0의 개념이다. 협상의 세계에서도 거래 상대방은 적이나 경쟁가가 아니라 동반자라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거래 상대방이나 직장 동료는 엄연하게 경쟁자인데 동반자라고 말하다니, 너무 순진하고 한가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그들은 경쟁자일 수 있다. 오해할까 염려된다. 대부분의 거래처나 동료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동반자라는 거지, 모든 사람들이 동반자라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상대방이 실제로 어떤지는 우린 잘 모른다. 사실은, 그들이 경쟁자인지 동반자인지는 내가 결정한다. 내 마음속에서 그를 적으로 생각하면, 그는 이미 나의 적이다. 내 마음속에서 그를 동료로 생각하면 그는 이미 나의 동료다. 실제로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내 해석이 나에겐 진실이기 때문이다. 적은 실재하지 않는다. 오직 내 생각이 적을 만들어 낼 뿐이다. 적은 오로지 내 마음속에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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