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11일 고척돔에서 메탈리카 공연이 있었습니다. 메탈리카는 헤비메탈의 하위 장르로 스래시 메탈이라고 하는 장르의 음악을 하는 밴드인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유독 인기가 많습니다. 1996년부터 이번까지 모두 네 차례의 공연을 했고요, 한 번에 수만 명의 관중이 입장해서 누적 관객수가 10만 명을 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까 맨날 오던 사람들만 오는 것 같더군요.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들과 아줌마들이 주 관객층이었습니다. 저도 이번 공연이 세 번째이거든요. 메탈리카가 우리나라에서 아재밴드로 불리는 이유가 있더군요. 오늘은 메탈리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공연을 보러 가기까지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해프닝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록음악을 하도 좋아하고 자주 들으니까 아내는 결혼 후에 느지막이 록음악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속을 썩일 때마다 속이 시원하다며 점점 강한 음악을 듣더니 어느 날 메탈리카를 듣더군요. 그래서 부부동반으로 이번 공연을 가기로 했습니다. 공연 예매 티켓을 오픈한 날, 맨 앞 스탠딩 좌석을 끊었습니다. 11살 된 딸은 처갓집에 맡기기로 했지요. 그런데 공연을 2주 놔두고 장모님께 일이 생기셔서 딸을 맡길 수가 없게 됐습니다. 다른 곳을 찾으려다가 딸아이도 데려가는 게 어떠냐고 이야기가 돼서, 표를 하나 더 예매했습니다. 문제는 걸그룹이 부르는 예쁜 음악만 즐기는 딸아이가, 경험도 좋지만 스래시 메탈을 즐길 수 있느냐는 거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스래시 메탈은 세게 때리다(thrash)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거센 기타의 반복적인 코드 진행, 드럼의 빠른 연주, 꽥꽥거리는 금속성의 보컬 등 그야말로 시끄럽고 공격적인 음악입니다. 가끔씩 메탈리카의 음악을 집에서 큰 소리로 틀어놓거나,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는 아이에게 들려주면 딸아이는 귀를 틀어막거나 이불을 뒤집어쓰며 끄라고 소리쳤습니다. 우리는 2주 동안 딸아이가 메탈리카의 음악에 익숙해지도록 매일 1시간씩 틀어줬습니다. 메탈리카의 음악 중에서 가장 소프트한 5집에 있는 노래를 여러 번 들려준 후 리듬감이 있는 노래 위주로 골라서 틀어줬습니다. 힘없는 우리 딸은 부모 둘 다 웃으면서 들려주는 시끄러운 음악에 차마 싫다는 말도 못하고 그냥 들었습니다. 아이가 끝까지 음악을 즐기지 못했던 걸 보면 ‘아동학대’를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2주 동안 특훈을 마친 딸아이와 함께 우리 가족은 신나게 공연장으로 향했습니다. 메탈리카 공연은 늘 그렇듯이 참 좋았습니다. 딸아이 눈치를 보면서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아빠, 이 음악 들어본 것 같아” 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딸도 아빠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게 됐구나’ 라는 생각도 잠시였죠. 그렇게 서너 곡 듣더니, 딸아이는 졸리다며 스탠딩 구역 맨 뒤에 있는 벽 앞에 쪼그리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공연 끝날 때까지, 그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잘도 자더군요.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남들도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진리는 어릴 때 다 배웠습니다. 이솝 우화 ‘여우와 두루미’에서요. 딸아이한테도 분명 이 우화를 읽어줬는데 말입니다. 일요일마다 일찍 일어나는 게 상쾌하다며 꼭두새벽부터 우리 형제를 깨웠던 아버지, 건강에 좋다며 모든 직원들에게 최소 1년에 한번 이상은 돌아가며 등산을 같이 가자고 했던 사장님, 자기가 느꼈던 여행지에서의 감동을 전해주려고 1천장도 넘는 사진을 일일이 설명해주던 친구, 갓 태어난 아이의 신비로움과 감동을 전해주려고 휴대폰에 있는 수백 장이 넘는 똑같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주던 후배, 모두 저를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단, 자기 방식으로 사랑했지요. 리더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 칼럼에 대한 회신은 capomaru@gmail.com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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