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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요즈음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창세기는 이렇습니다. 태초에 혼돈에서 대지의 신인 가이아가 생겨났죠. 가이아는 아들이자 남편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함께, 거대한 12명의 티탄, 외눈박이를 비롯해서 흉측하게 생긴 키클롭스 3형제와 헤카톤케이레스 3형제도 낳았습니다. 우라노스는 말썽을 일삼는 키클롭스와 헤카톤케이레스를 지하세계인 타르타로스에 가뒀습니다. 이에 분노한 가이아는 막내 아들인 크로노스를 설득해서 우라노스에게 복수를 했습니다. 우라노스는 죽으면서 “너도 네 자식의 손에 죽게 될 운명”이라고 저주를 내렸습니다. 세상을 지배하게 된 크로노스는 흉측한 형제들을 다시 가둬서 가이아에게도 노여움을 샀습니다. 

크로노스는 저주를 피하고자 아내인 레아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삼켜 버렸습니다. 아이들의 죽음에 가슴 아파했던 레아는 막내 아들을 낳은 후에는 돌을 보자기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먹이고 그 아이를 빼돌렸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제우스입니다. 훗날 제우스는 크로노스의 뱃속에 있는 형제들을 모두 토하게 해서 살려낸 후, 그들과 힘을 합쳐 크로노스를 몰아냅니다. 뿐만 아니라 티탄족을 정복하고 신들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신들의 이야기가 이어지죠. 

1808년 나폴레옹은 대규모 군대를 파견해서 스페인을 점령하고 형인 조지프 보나파르트를 스페인 왕에 앉힙니다. 당시 스페인의 왕실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는 프랑스 대혁명과 혁명의 수호자인 나폴레옹을 찬양했는데요. 나폴레옹의 군대가 스페인을 점령하고, 거기에 반발해서 일어난 스페인 시민들의 민중봉기, 이를 진입하기 위한 보복 학살, 이후 6년간 이어진 전쟁의 참상은 고야가 꿈꿨던 이성이 지배하는 시대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1814년 왕위에 복귀한 페르난도 7세가 고야를 불렀지만, 고야는 왕궁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람들과 떨어져 자택에 칩거했습니다. 이때 좌절과 절망에 사로잡혀 자기 집 벽에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나 끔찍한 상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기괴한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를 검은 그림이라고 하는데요. 

그 중에서도 으뜸은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입니다. 사투르누스가 바로 로마 신화에서 크로노스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고야는 당시 자기 시대의 사람들이 벌이고 있는 일들이 자식 세대의 미래를 잡아먹고 있다고 느낀 겁니다. 한때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의 이상을 믿었지만 세상은 사리사욕에 눈먼 사람들이 더 많았던 것이었죠. 고야는 절망했고 그걸 그림에 표현했습니다. 그림을 보면 아이를 뜯어먹는 사투르누스의 눈은 광기와 공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자신이 살고자 자기의 아이를 죽일 때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 그림을 봤을 때 눈 아래 그림자가 흡사 눈물처럼 보였습니다. 혹시 사투르누스는, 공포와 두려움에 더해, 슬픔을 동시에 느끼진 않았을까요? 

요즈음 이 ‘슬픈’ 그림이 많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미래를 삼켜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물론 어른과 어린이는 걱정하는 게 다르죠. 어린이는 문제가 발생해야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어른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걱정을 한다는 게 차이점입니다. 문제가 발생하면 어른들에게 걱정은 사라집니다. 어떻게든 그걸 해결하느라 걱정할 일이 없어지니까요. 그래서 어른들의 걱정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고야도 비관적으로 걱정했지만, 결국 그 이후에 세상은 좋아졌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고야가 그린 사투르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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