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 하나는 아내가 “당신 잠깐 여기 좀 앉아봐. 대화 좀 하자구”란 말만 들으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고 고백한다. 사실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잔소리 혹은 설교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둘 만의 시간을 피하려고 한단다. 나 역시 아내가 우리 대화 좀 하자고 하면 늘 긴장을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뭘 잘못했지? 화장품 뚜껑을 닫지 않았나? 아니면 양말을 벗어 아무데나 놨나? 뭐지?”란 생각을 하게 된다. 반은 예상대로 내 잘못을 상기시키는 것이고 나머지 반은 그냥 뭔가를 얘기하는 것이다. 이래저래 대화는 쉽지 않다. 대화란 무엇일까? 對話는 대할 對와 플러스 얘기할 話이다. 마주 보고 얘기를 나누는 것이 대화이다.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정의는 둘이 마주 앉아 너와 나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대화와 수다는 다르다. 수다는 나와 상관 없는 사람의 얘기를 잔뜩 늘어놓는 것이다. 연예인 얘기, 사돈의 팔촌 이야기, 신문에서 읽은 얘기 등이 그렇다. 잠시는 들을 만 하지만 재미는 없다. 대화는 독백과도 다르다. 독백은 글자 그대로 혼자 자기얘기를 하는 것이다. 높은 사람 중 독백을 대화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만나는 순간 안부도 묻지 않고 자신이 얼마나 잘 났는지, 사람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환호하는지, 최근 다녀온 여행지가 얼마나 멋진지를 얘기한다. 지루하지만 높은 사람이기 때문에 함부로 표시를 못한다. 맞장구도 치면서 열심히 듣는다. 그러다 보니 독백하는 사람은 자신이 독백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들었던 얘기를 재탕 삼탕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대화 아닌 독백을 몇 시간 듣고 나면 엄청 피곤하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는 들은 얘기를 듣지 않은 것 같은 표정으로 앉아 오랫동안 듣는 것이다. 좋은 대화란 무엇일까? 맛난 대화는 어떤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대화는 둘 셋이 만나 서로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나는 너에 대해 얘기하고, 너는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나는 너의 안부를 묻고 너는 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다. 서로에게 그 동안의 안부를 묻고 답하고 그걸 바탕으로 질문하고 공감하고 경청하는 것이다. 과정에서 당연히 웃고 눈물도 보이고 위로도 주고 받는다. 카타르시스도 경험하고 따스함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다른 것이 끼어들지 못하게끔 앞에 앉은 상대에게 집중하는 것이다. 거기에 맞춰 자기 얘기도 적절히 하는 것이다. 최고의 대화는 사랑의 대화이다.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을 얘기하는 것이다. 내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 맘에 들었던 부분, 지금 내 감정 등을 얘기하는 것이다. 상대 역시 날 처음 봤을 때의 감정을 얘기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눈빛으로 당신 맘을 알았다 등등… 세상에 그 얘기만큼 재미나고 관심 가는 얘기는 없다. 몇 번을 들어도 지루하지 않다. 그런 얘기에는 누구나 빨려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대화이다. 대화는 탁구와 같다. 주고 받아야 한다. 근데 마이크를 잡으면 놓지 않는 아저씨들이 있다. 권력을 가진 아저씨 중 이런 사람이 많다. 상대가 누구건, 이 주제에 관심이 있건 없건, 남이야 듣건 말건 혼자서 신이 나서 온갖 얘기를 다 한다. 상대는 들을 수 밖에 없다. 사장님이 좋아서 떠드는데 말을 끊을 수는 없다. “사장님, 그만 하시죠. 저도 얘기 좀 해요”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말하는 사람이 알아서 분위기를 파악하고 마이크를 넘겨야 한다. 답답한 일이다. 반대로 자기 얘기는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조용히 앉아만 있다. 자기 순서가 되면 마이크를 잡고 자기 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활기를 띤다. 대화의 본질은 주고 받는 것이다. 볼을 넘길 때 넘기고 받을 때 받아야 한다. 내 직업 중 하나인 코칭은 돈을 받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가 가진 아픔과 어려움을 파악하고 적절한 질문을 던지거나 해법을 제시해 그 사람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한다. 혼자 그런 생각도 해 본다. 만약 바둑처럼 대화도 등급을 매긴다면 난 몇 급이나 될까? 당신은 어떨 것 같은가? 대화의 달인이 되고 싶다. 맛있는 대화를 하고 싶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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