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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聞이 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영어로는 Seeing is believing이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란 뜻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맹점이 있다. 본다고 다 같이 보는 것은 아니다. 같은 것을 봐도 그 사람의 관심, 정보,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보는 사람도 있고 눈에 뻔히 보이는 것조차 놓치는 사람도 있다. 또 신체 기관 중 가장 믿지 못할 것이 바로 눈이다. 착각현상이 가장 심하다. 

불교 언어 중 육근(六根)이란 게 있다.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그것이다. 세상을 인식하는 신체기관을 뜻한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뜻한다. 그것을 갖고 육경인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감지하는 것이다. 색, 소리, 냄새, 맛, 촉감, 뜻이다. 거기서 가장 먼저 나온 것이 바로 눈이다. 그만큼 눈은 정보습득에는 압도적 우위를 갖고 있다. 만약 보지 못한다면 그만큼 정보습득에는 문제가 생긴다. 이처럼 모든 것은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사랑도 누군가를 보면서 시작되고 뭔가를 봐야 느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 일상을 봐도 그렇다. 우리는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뭔가를 보는 데 사용한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정도가 심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 종일 뭔가를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본다고 다 같은 건 아니다.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논리를 뜻하는 Theory는 본다가 어원이다. 보는 것에서 논리가 시작된다. 보고 관찰하고 그것과 연계된 생각을 하면서 논리란 것이 생긴 것이다. 극장의 Theater도 보는 곳을 뜻한다. 이처럼 모든 것의 출발점은 보는 것이다. 보는 것과 관련한 영어를 살펴보는 일은 흥미롭다. 영어의 Spect는 본다는 뜻이다. 존경을 뜻하는 Respect는 다시 본다는 뜻이다. 흔히 그 사람이 대단하단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 그 사람 다시 봤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줄 몰랐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이 싫을 때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다시 본다는 것은 존경한다는 말이다. 의심을 뜻하는 Suspect는 위를 본다는 의미이다. 의심스러울 때 눈을 치켜 뜨는 것을 보고 만든 말이다. 무시한다는 말은 Despise이다. 내려다본다는 의미이다. 우리 말 무시 無視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우리는 아예 보지 않는다.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것이다. 신중하다는 Circumspect의 어원은 사방을 본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살피는 것을 뜻한다. 

한자에는 보는 것 관련한 단어가 특히 많다. 가장 흔한 것은 볼 見이다. 눈 目 플러스 사람 인人이다. 달린 눈을 갖고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다. 별 생각 없이 그냥 보는 것을 뜻한다. 견학이 그렇다. 견학은 큰 부담 없이 그냥 가볍게 보고 배우는 것을 의미한다. 다음은 볼 간看이다. 손 手 밑에 눈 目이 있다. 눈 위에 손을 얹고 보는 것이다. 견 보다는 꼼꼼하지만 간 역시 대충 보는 것이다. 주마간산이 대표 단어이다. 성省, 시視, 관觀은 꼼꼼히 살피는 것이다. 살필 省은 작을 小 플러스 눈 목目이다. 눈을 조그맣게 뜨고 보는 것이다. 뭔가를 자세히 살필 때는 눈을 작게 한다. 작은 것까지 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성찰이 그렇다. 볼 시視는 보일 시示 플러스 볼 견이다. 보일 시는 제삿상 혹은 신을 뜻하기도 한다. 신과 인간이 같이 보는 것이다. 하나를 집중해서 보는 것이다. 시찰 간다,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주시 혹은 응시 등에 쓰인다. 다음은 볼 관觀이다. 황새 관雚 플러스 볼 견이다. 키 큰 황새가 보는 것을 뜻한다. 주의 깊게 보는 것이다. 피상적으로 보지 않고 이면을 살피는 것이다. 관찰, 관점 등에 쓰인다. 

첨瞻과 감瞰도 있다. 첨은 아래에서 위를 보는 것이고 감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이다. 첨성대는 별을 보는 곳, 조감도는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는 것이다. 감독하고 감시할 때 쓰는 볼 감 監은 신하 臣 플러스 그릇 명 皿이다. 물에 담긴 그릇을 들여다본다는 말이다. 관찰에 쓰는 살필 찰 察은 집 면宀 플러스 제사 祭이다. 제사 祭를 파자하면 제단에서 고기를 손에 들고 올리는 모습이다. 살핀다는 것은 제삿상에 빠진 것은 없는지 배치는 제대로 됐는지를 꼼꼼히 보는 것이다. 이것과는 좀 거리가 있지만 보일 시와 연계된 단어 중에 고요할 선禪 이 있다. 볼 示 플러스 홑 單 이다. 사물이나 풍경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간단명료하게 보는 것이 선이다. 복잡한 생각에 영혼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고 심플하게 생각하는 것이 선인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보면 보이지만 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을 보면 보이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낮은 사람의 애로를 모른다. 눈을 너무 믿으면 안 된다. 보는 것의 압권은 밝을 명明이란 생각이다. 태양과 달의 결합이다. 참 지혜는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동시에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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