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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때문에 이틀 동안 지방에 내려갔다. 무슨 과정의 맨 마지막 강의를 내가 맡았는데 사람이 많지 않아 둥그렇게 앉아 그들이 질문하고 내가 답하는 식으로 진행을 했다. 이미 한 학기 동안 관련 수업을 들었기 때문에 질문의 반은 경영관련이고 나머지 반은 여러 주제를 왔다 갔다 했다. 세 시간을 했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사람들 반응도 뜨거웠다. 저녁 10시 넘어 호텔로 돌아왔는데 다음 날 아침 어제 참가자 중 한 사람이 만나고 싶다는 문자를 했다. 뭔가 상의할 게 있다는 것이다. 마침 시간이 괜찮아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직원이 30명쯤 되는 자그마한 회사를 경영하는 사람인데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같은 업을 하는 사람끼리 협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3년전쯤 회장을 했습니다. 회장을 하던 그때 모 기관에서 낸 큰 프로젝트에 제가 당첨 되었는데 그 일로 말이 많았지요. 회장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항의였지요. 뒤늦게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어 취소하려고 하니 벌금이 너무 센 거예요. 할 수 없이 사과를 하고 그 프로젝트를 받아 진행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미운 털이 박혀 힘든 시간을 보냈고 지금까지 후유증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도 들어온 것도 뭔가 기업인으로서의 사명과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한 학기 배우면서 경영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앞으론 정말 철학이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나랑 상의할 게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 전력이 있다 보니 자꾸 저를 뒷담화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건은 저랑 무관한데도 불구하고 계속 저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보다 못한 친구 하나가 왜 바보같이 대응을 하지 않냐며 제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도 더 이상 계속 당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 적극 대응을 검토하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라며 제 의견을 물었다. 제한된 정보를 갖고 자문을 하긴 힘들어 회사에 가 보자고 했다. 작지만 알차게 운영을 하고 직원들도 씩씩해 보였다. 다들 인사도 잘 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은 자신이 변화해서 그런지 직원들도 달라졌다는 얘기를 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 건에 대해 얘길 했다. 난 첫 질문을 던졌다. “적극 대응을 해서 얻는 게 뭔가요?” 잠시 생각하던 그는 “별다른 건 없습니다. 제가 당하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지요.” 한 마디로 자신이 바보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란다. 이어 물었다. “대응을 하지 않을 때 잃는 게 뭡니까?” 그는 바로 답했다. “별로 잃는 건 없어요. 어차피 그 친구들은 나를 싫어하겠지만 그렇다고 사업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저도 나름 이 동네에선 고정고객도 있고 평판도 괜찮거든요.” 나는 다음 얘기로 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이 구구단문제로 논쟁이 벌어졌어요. 한 사람은 사칠(4*7)은 27이라고 하고, 또 다른 친구는 사칠은 28이라고 했던 것이지요. 서로 자기가 옳다고 싸웠습니다. 싸워도 결판이 나지 않자 원님을 찾아가 이 얘기를 하며 공정한 심판을 부탁했습니다. 두 사람 얘기를 들은 원님은 사칠은 이십칠에게는 집에 돌아가라고 얘기했고, 사칠은 이십팔을 부른 사람은 묶은 후 곤장 칠 것을 명령했습니다. 사칠은 이십칠은 손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당당하게 집으로 돌아갔고 이십팔은 곤장을 열대 맞았습니다. 다 맞고 난 이십팔은 자신은 정답을 맞췄는데 왜 맞아야 하냐며 원님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원님은 과연 뭐라고 얘길 했을까요?” 그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원님은 “인간아, 저런 인간하고 싸우는 네가 너 나쁜 놈이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사장은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대응하지 말라는 얘기네요. 알았습니다. 대응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게 마련이다. 억울한 일도 있고, 답답한 일도 생기고, 해명하고 싶은 일도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어떨 때는 가만히 놔두는 것이 베스트인 경우도 있다. 대응한다고 상대가 설득되는 것도 아니고, 내 속이 시원한 것도 아니고, 어떨 때는 사건만 더 커지기도 한다. 그럴 때는 무대응이 방법이다. 무대응도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무대응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다 보면 제 풀에 지쳐 없던 일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공정한 신은 시간이란 신이다. 시간이 흐르면 많은 것의 진실이 밝혀지게 마련이다. 또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