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과거가 늘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많은 시간을 미래보다는 과거에 대한 생각을 하는데 쓴다. 당연히 미래에 대한 얘기보다는 과거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이들이 과거 얘기를 많이 하는 것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재가 불만족스러우니까 상대적으로 과거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별거 아닌 과거를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한다. 이들은 미래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살면서 과거 얘기를 할 수는 있다. 추억을 회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것은 한 두 번에 그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화를 할 줄 모른다. 세상 모든 사람을 계몽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들을 줄도 모른다. 아니 세상에 자신이 들어야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질문도 없고 궁금한 것도 없다. 이들 눈에 세상은 늘 한심해 보인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들은 늘 사람들 앞에서 떠들 준비가 되어 있다. 이들에게 잘못 걸리면 그날은 죽음이다. 꼼짝없이 지루한 무용담 내지는 설교를 들어야 한다. 한 번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은 이들을 슬슬 피한다. 당연히 이들은 새로운 먹잇감을 찾아 헤맨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늘 엄숙하고 경건하다. 이들은 삶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늘 입꼬리가 처져 있고 세상의 모든 고민을 짊어지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그 자체로 고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들어오면 밝았던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이들이 나가면 비로소 사람들은 숨을 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집안에 이런 꼰대가 있으면 그 집안은 쑥대밭이 된다. 조직의 장이 이런 사람이면 그 자체로 생산성 저하의 원인이 된다. 신입사원들 혹은 반짝이는 젊은 사람들이 회사를 다니기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들 때문에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공부하지 않는 사람이다. 지난 몇 년간 책 한 권 읽지 않고 새로운 곳에 도전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근거 없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은 이래야 하고 저것은 저러면 안 되고… 도대체 그렇게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그런 확신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런 확신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 꼰대를 보면 학즉불고(學即不固)란 공자님 말씀을 변형한 불학즉고(不學即固)란 말이 생각난다. 공부하면 유연해지고 공부하지 않으면 고집불통이 된다는 말이다. 무지한 자들일수록 확신에 넘쳐 떠들어댄다. 내가 생각하는 꼰대는 남자만이 아니다. 여자들 중에도 있다. 생전 책 한 권 읽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고 사회 돌아가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 남편 얘기와 애들 얘기 외에는 관심분야가 없는 사람, 자신은 공부하지 않으면서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사람, 자신의 한을 자식을 통해 풀려는 사람, 무조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고 하면서 자식의 날개를 부러뜨리는 사람, 일이 되지 않을 때 모든 것을 외부의 원인으로 돌리는 사람들이다. 꼰대란 한 마디로 말이 많은 사람이다. 말이 많은 건 교만이다. 내가 너희들보다 아는 게 많다, 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 설교를 들어야 한다는 마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강의하는 사람 중에도 꼰대가 많다. 그들은 대화대신 늘 설교를 하려고 한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고 듣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늘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뭔가 된듯한 착각을 한다. 난 그런 꼰대가 되는 게 너무너무 두렵다. 혹시 그런 증세가 보이면 지체 없이 피드백을 주길 바란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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