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일을 하기 전에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그 일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하고자 하는 일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이고, 그것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이다. 조직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상당 부분은 일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그 정의가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언어의 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그 말에 대해 모두 다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근데 말의 정의를 내리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 바로 어원을 찾아보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책 “리더를 위한 한자 인문학”이 바로 그런 책이다. 한자의 어원에서 삶의 지혜를 알게끔 도와주는 책이다. 한자는 상형문자이다.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해 온갖 궁리를 하고 상상을 해 만든 글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를 보면 옛날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다. 한자는 간결하다. 구질구질하게 여러 소리를 하지 않고 한 단어로 명확하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표현한다. 그래서 소통의 에러를 줄일 수 있다. 임금 군(君)은 다스릴 윤(尹)에 입 구(口)를 쓴다. 다스릴 윤(尹)은 오른손 우(又)에 삐칠 별(丿)이다. 막대기는 방향을 가리키는 지휘봉이다. 군이란 지휘봉과 입을 함께 갖춘 자를 뜻한다. 리더십에서는 말과 방향성이 중요하다. 번잡할 번(煩)은 불 화(火)변에 머리 혈(頁)을 쓴다. 머리에서 불이 난다는 말이다. 이 일 저 일 정신 없이 하다 보면 머리가 뜨거워지는 걸 보고 이 글자를 만든 것 같다. 바쁠 망(忙)은 마음 심(心) 변에 죽을 사(亡)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놓치는 일도 많고 깜박하는 경우도 많다. 이를 보고 마음이 죽었다고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바쁜 것을 유능하게 생각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바쁜 걸 좋지 않게 본 것 같다. 요즘 모든 기업이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 잘 되는 조직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자에서 얘기하는 위기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위태할 위(危)를 보자. 위는 가파른 절벽 厂 (바위 엄)에서 떨어져 다친 사람 㔾 (병부 절)을 형상화한 액(厄) 위에 또 다른 사람이 떨면서 절벽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이미 한 사람이 다쳤는데 또 한 명이 다칠 수 있는 백척간두의 찰나를 포착한 글자다. 틀 기(機) 는 나무 목(木), 기미 기(幾)이다. 기는 다시 실마리 요(幺), 창 과(戈), 사람 인(人)으로 되어 있다.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로 베를 짜는 것이다. 기미란 말은 보이지 않는 작은 신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간파하는 것이다. 기의 핵심은 미약한 것이다. 미약한 것에 주의를 기울여 일을 추진하다 보면 그것이 모여 기회가 된다는 것이다. 이를 바꾸어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 지금 사업이 어렵다는 것은 기존의 상품과 서비스에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바꿔 얘기하면 다른 상품과 서비스에 눈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고, 이의 조짐은 작게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으니 그걸 잘 살리라는 것이다. 리더십이란 다른 사람을 통해 자기의 비전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사고 끌어 모으는 능력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밥을 잘 사야 한다. 이런 걸 뜻하는 한자들이 있다. 대접할 향(饗)이 그렇다. 대접할 향(饗)은 고향 향(鄕)에서 유래했다. 좌측은 언덕 부(阝) 우측은 고을 읍의 부이다. 두 글자 사이에 밥을 뜻하는 급(皀)이 있다. 마을의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밥을 먹는 모습이다. 향연은 잔치를 의미한다. 향은 고대에도 식사소통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벼슬 경(卿)도 두 사람이 마주 보고 밥을 먹는 모습이다. 고향 향, 대접할 향, 벼슬 경은 모두 한 뿌리에서 나온 말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존중해 식사를 함께 하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벼슬 작(爵)은 한 손에 새처럼 생긴 술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심포지움도 함께 술을 마신다는 뜻이다. 우리가 자주 하는 회의의 모일 회(會)도 따지고 보면 같이 모여 밥을 먹는 것에서 유래했다. 마지막은 참을 인(忍)이다. 참을 인(忍)은 칼날 인(刃)에 마음 심(心)이 합해진 글자다. 심장에 칼이 꽂혀 있는 모습이다. 인내란 말 그대로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아픔일지라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리더들은 대부분 성격이 급하다. 답답한 부하직원을 시키느니 차라리 자신이 하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되면 부하들은 성장하지 못한다. 자신만 바빠질 뿐이다. 굴욕도 참을 수 있어야 하고 때로는 때를 기다릴 수도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분노를 참을 수 있어야 한다. 분노를 참는 것은 단순한 도덕성을 넘어 강력한 역량이다. 당장의 억울함과 울분을 참고 새기는 것은 동양에서 리더의 덕목으로 한결같이 강조하는 바다. “호랑이는 아무데서나 성깔을 부리지 않는다.” 중국의 전설적인 거상 호설암의 말이다. 집에서는 호랑이 같고 밖에서는 얌전한 고양이 같은 사람은 성공하기 어렵다. 평소에는 자신의 기개를 드러내지 않다가 위기가 닥쳤을 때 놀라운 능력과 지혜를 발휘하는 사람이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이다. “참을 수 있는 것은 인내가 아니다. 참을 수 없는데도 참아야 그게 진짜 인내이다.” 김종필 총리의 말이다. 한자는 생각하게 하는 언어이다. 감사(感謝)란 말을 뜯어보면 마음 심(心)에 다할 함(咸), 말씀 언(言)에 쏠 사(射)를 쓴다. 마음을 다해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냥 속으로만 고맙다고 생각하는 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난 한자를 볼 때마다 옛사람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감탄을 한다. 이 책이 그런 것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
PREV [고현숙] 단순함이 실력이다
-
NEXT [이병주] 경험과 지식의 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