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CEO에서 책을 소개한지 15년이 되어간다. 처음 이 부탁을 받았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책을 읽고 이를 8분짜리 동영상으로 소개해달라는 것인데 이게 어떤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사실 이 일이 별로 마음에 들이 않았다. 첫째는 남들처럼 내 주제를 갖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책은 남의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책을 읽는 건 좋지만 이를 소개하는 건 또 다른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노동집약적인 일이었다. 셋째는 제한된 시간 내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8분짜리 동영상으로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내용을 A4지 한 장 반쯤으로 요약해야 했다. 근데 이렇게 줄이는 것이 무리란 생각이 들었다. 자칫하면 반쯤 소개하고 정작 소개해야 할 것은 못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그렇지만 주어진 일이라 매번 열심히 요약하고 성실하게 동영상을 촬영했다. 그러면서 15년 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다른 기회가 생겼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이란 잡지에서 책 서평을 하게 된 것이다. 여기는 SERICEO보다는 제한의 폭이 줄었다. 책 선정에도 그렇지만 길이가 A4 다섯 장으로 대폭 늘어났다. 책 내용을 많이 소개할 수 있고, 내 생각도 집어넣을 수 있고, 여러 면에서 장점이 많았다. 오랫동안 책을 읽고 소개하면서 변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어떨 때는 스스로의 변화에 내 자신이 놀란다. 우선 통찰력이 생겼다. 무당이 갖고 있는 신기 神氣까지는 아니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갖게 된다. 특히 사람과 기업 관련한 일에서 그렇다. 난 기업 강의가 주업이다. 기업 강의 전 그 회사 관련해 공부도 하고 그 회사를 아는 지인들로부터 정보도 얻는다. 실제 강의를 가보면 살아있는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다. 강의 전 담당자가 나를 대하는 태도, 사람들 표정, 강의장 분위기, 상사를 대하는 태도 등에서 이 회사가 어떤지 나름의 감이 온다. 강의 전이나 후에 고위임원과 얘길 나눌 기회도 많은데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이고, 어떤 강점을 가졌는지, 지금 문제가 어떤지 등 좀 더 세밀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대화 중 나도 모르게 느낀 점과 이 회사의 문제점 등에 대해 얘기하면 많은 고객들이 놀란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파악을 했느냐, 그 아이디어 정말 좋은데 좀 더 얘기해줄 수 있느냐 같은 피드백이다. 또 다른 변화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이다. 나는 강의 외에 임원과 CEO코칭을 한다. 대부분 잘 나가는 사람이지만 그런 만큼 힘든 문제를 갖고 있고 그런 문제는 풀기가 어렵다. 자신의 미래 걱정, 리더십 이슈, 상사와의 갈등, 목표 달성 문제, 가정 문제 등 문제의 종류가 다양하다. 나의 역할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가 가진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다. 스스로 답을 내는 경우도 있고, 내가 답을 말하는 경우도 있고, 문제는 꺼냈지만 그냥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외부에서 스카우트된 임원이 상사와의 갈등에 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자신의 전문성 덕분에 이 기업에 오게 됐는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 너무 무리하게 자기를 억압한다는 것이다. 온지 며칠 되지 않았는데 벌써 성과 운운하며 숫자로 자신을 압박해 얼마 전에는 한 번 충돌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분위기가 썰렁하단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행동하면 불편해지고 문제가 커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상사가 왜 그런 것 같나요? 당신이 미워서 그럴까요? 만약 당신이 그 사람 상사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숫자로 압박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요?” 그 임원은 당황하면서 잠시 생각한 후 “저도 똑같이 할 것 같네요”.라고 답했다. 이어 자신은 그 동안 자기 생각만 했지 한 번도 상사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얘길 했다. 이런 변화가 내게 일어난 이유는 바로 엄청난 양의 독서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누구보다 많은 간접 경험을 했다. 다양한 대인관계 사례를 공부했다. 무엇보다 아이디어가 많아졌다. 누군가 어떤 이슈에 대해 얘기를 하면 관련 책과 책에서 읽었던 사례, 해결방안 등이 줄줄이 떠오른다. 사람은 자신이 읽은 것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있다. 엔지니어로 살던 내가 인문학 책을 소개하다 보니 다른 사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은 미래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여러 노력 중 투자 대비 효과가 가장 큰 것은 바로 독서이다. 관련한 책을 읽는 것이다. 얼마 전 고현숙 교수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은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으세요?” Who are you becoming? 멋진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보다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란 질문이 훨씬 호소력이 있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가? * 칼럼에 대한 회신은 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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