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선거철이 다가온다. 정치인은 저마다 목소리를 높인다. 토론도 늘었다. 토론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열심히 쏟아낸다. 그런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길거리에서도 명함을 돌리며 인사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조금만 관심을 보이면 자신의 비전과 공약을 쏟아낸다. 무슨 말인지 안 들어온다. 이처럼 소통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일간지에 소통이라는 단어가 10년 전에 비해서 다섯 배나 늘었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기업이 거대해지면서 소통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성으로 사람들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소통이 더욱 중요해졌다. 소통이 왜 힘든지 알려주는 연구가 있다.
1990년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과에서 ‘두드리는 자와 듣는 자(tapper and listener)’라는 간단한 실험을 고안했다. 한 사람은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박자에 맞춰서 탁자를 두드리고, 다른 사람은 그 소리를 듣고 어떤 노래인지 맞추는 게임이다. 노래는 ‘생일 축하합니다’처럼 아주 쉬운 것만 틀어줬다.
120쌍에게 같은 실험을 되풀이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세 명밖에 맞추지 못했다. 2.5%의 정답률. 너무 낮다. 그런데 이 실험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노래를 듣기 전에 두드리는 사람에게 예행연습을 시킨 후 듣는 사람이 이 노래를 맞출 것인지 예상해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50%가 상대방이 노래를 맞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2.5%와 50% 너무 큰 차이다.
듣는 사람은 모스 부호 같은 ‘탁탁’거리는 소리만 듣고 음악을 맞춰야 한다. 이런 단순한 정보로는 노래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두드리는 사람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으므로 가사, 멜로디, 리듬을 다 듣고 있다. 이어폰에서 나오는 시끄러운 노랫소리에 탁자를 두드리는 단순한 소리는 쉽게 묻혀버리고 만다. 여기서 착각이 생긴다. 두드리는 사람은 듣는 사람도 자기가 듣고 있는 노래의 선율이 어느 정도 전달되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상대방의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실제로는 3%에도 못 미치는 정답률을 50% 정도로 예측한 것이다. 이 실험은 정보나 지식이 올바른 소통에 심각한 방해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이 현상을 ‘지식의 저주’라고 이름 붙였다.
안타까운 점은 조직이 복잡해지는 만큼 리더들이 처리하는 정보와 지식의 양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통을 하기 위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는 간단해질 수 밖에 없다. 조직의 리더는 현재 회사가 처해있는 복잡한 상황, 다양한 정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전략 방향을 생각한다. 회사의 ‘가사, 멜로디, 리듬’을 떠올리는 것이다. 물론 구성원들은 ‘탁자 두드리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이렇게 소통은 점점 어려워진다. 정보사회에서 아는 것은 곧 힘이었다. 소통의 시대에 아는 게 병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실험에서 두드리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소리를 들어봤다면 얘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CEO는 직원들이 자기만큼 회사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고 불만이고 정치인은 자신의 오랜 고민을 유권자들이 몰라준다고 야속해 한다. 하지만 소통은 먼저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게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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