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떠나온 나와 달리 언니는 고향 제주를 지켰다. 어머니가 7남매의 맏이였던 까닭에 우린 외삼촌과 이모들이 많다. 언제부턴가 언니와 이모, 외숙모 등 집안 여자들이 함께 하는 취미생활이 생겼는데 그건 한 달에 한 번 노래방에 함께 가는 거다. 멤버들이 이젠 다 육,칠십대가 되었지만 계 모임처럼 지속되는 모양이었다. 모임 날에는 가장 젊은 우리 언니가 차를 가지고 나서며 출발한다고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각자 집에 도착할 시간을 알기에 집 앞에 나와 기다린다. 그 차를 함께 못 타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니 시간을 칼 같이 잘 지킨다고 한다. 다섯 명은 이렇게 차 한 대로 오고, 집이 먼 한 분만 따로 와서 합류. 이렇게 여섯 분이 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서는 바로 노래방으로 간다.
들어보니 이분들 정말 노래방 달인이다. 우선 노래책을 뒤적이며 번호를 찾는 아마추어 짓은 하지 않는다. 각자 부를 노래 번호를 종이에 다 적어온단다. 그 말을 듣고 난 빵 터졌다. 점잖고 조신한 큰외숙모님이나 수다스러운 둘째 이모나 노래 제목 번호를 진지하게 적어 내려가는 모습이 연상되어 웃겼다. 화장실도 다 다녀오고 만반의 준비가 된 다음에야 이용시간 카운트가 시작된다. 아까운 시간을 번호 찾는 데 낭비하지 않고 적어온 순서대로 예약을 걸어둔다. 점수 확인은 당연히 생략하고, 긴 간주나 후렴도 가차없이 건너 뛴다. 정해진 시간에 최대로 노래를 많이 하는 것, 모든 건 이 한 가지 목표에 맞춰져 있다. 효율성이 정말 장난 아니다. 각자의 노래 스타일, 좋아하는 노래, 각종 장단점을 전해 듣는데 정말 웃겼다. 작은 돈을 공들여 활용하는 모습에 정감이 느껴져서 이 노래방 모임 얘기를 들으면 늘 기분이 좋다.
최근 이 모임의 중대 소식은 큰 이모 청력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잘 들리지 않아서 보청기가 필요해졌는데, 그걸 끼는 것도 힘드셨는지 꼈다 말았다 하신다고 한다. 문제는 노래가 엉망이 된 거였다. 본인 소리가 잘 안 들리시다 보니 소리를 크게 지르시는데, 결정적으로 음정이 안 맞아서 듣는 게 괴로울 정도가 되었다. 애석하게도 큰 이모는 그중 가장 노래를 잘 부르던 분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듯 부드럽고 풍부한 음성이었고, 외가의 여러 딸들 중에 최고 고등 교육을 받은 분답게 교양미마저 흐르던 분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는 이웃이나 친척 중에 요란한 부부싸움을 하는 집도 참 많았는데, 이모는 일찌감치 우리에게 ‘결혼은 좋은 거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곤 했다. 그런 멋쟁이 이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음정도 맞지 않는 노래를 한다는 건 정말 슬픈 얘기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퀴즈가 있다. “다음 세 가지 문제는 원인이 한 가지다. 첫째 음치, 둘째 배우자와 사이가 나쁜 것, 셋째 즉석 스피치를 못하는 것. 원인이 무엇일까?” 정답은 듣는 능력 부족이다. 음치는 노래를 못 부르는 게 아니라 음이 분별되어 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 음을 정확하게 부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경청을 못하면 배우자와 사이가 좋을 리 없고, 잘 안 듣는 사람은 자리에 어울리는 즉석 스피치를 잘 할 수가 없다. 나는 임원 코칭을 할 때, 간혹 자신의 대화를 녹음하여 들어보기를 권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임원들이 자신이 어떻게 말하는지를 듣고는 깜짝 놀란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서는 의도로 평가하고 타인은 행동으로 판단한다.’는 스티븐 MR. 코비의 말대로 자신의 언행을 객관화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노래를 잘 부르려면 음을 잘 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을 잘하기 위해서 먼저 들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나저나 큰 이모의 청력이 회복될 길은 없는 걸까? 태아에서부터 가장 먼저 발달하는 감각도, 죽기 전에 최후까지 남아있는 감각도 청각이라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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