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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oaching Letter From CMI
 
   
 
 연히, 고민을 내놓고 다루는 TV프로그램을 보았다. 젊은 남자가 말하는 고민인즉, 여자친구가 남들 앞에서는 아주 상냥하게 자신을 위해주고 조신하게 처신하는데, 둘만 있을 때는 돌변하여 거의 자신을 하인 취급을 하고 막말을 한다는 하소연이었다. 아마 같이 사는 듯한데, 둘이 있을 때 받는 구박과 무리한 요구는 정말 방청객들이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그런데 카메라가 그 여친의 얼굴을 비추는 순간, 나는 왠지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눈에 봐도 성형을 많이 한 얼굴이다. 예쁘장한데 뭔가 자연스럽지 않은 얼굴. 남의 눈에 잘 보이려고 기를 쓰다 보면 결국 남들에게 비치는 ‘나’와 스스로 아는 '자신'의 괴리가 커질 것이다. 함께 사는 남자친구도 내면의 나와 같다. 남이 보는 앞에선 이상적인 커플로 보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마치 자신을 대하듯이 남자친구도 막 대하는 건 아닐까. 

브레네 브라운 박사는 사람들의 취약성에 대한 연구를 했는데, 그 내용에 나는 크게 공감했다. 왜 어떤 사람은 ‘사랑과 소속감’을 강하게 느끼며 건강하게 사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것의 결핍으로 인해 불안정하고 힘든 내면을 견뎌야 하는 걸까? 연구에 의하면 이 차이를 가져오는 변수는 단 한가지였다. 바로 ‘나는 사랑 받을 가치가 있고, 소속될 가치가 있다’는 느낌이 있느냐 없느냐였다. 이 느낌을 갖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누구나 불완전하고 남들에게 쉽게 내놓기 어려운 창피한 구석, 수치스러운 면을 갖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그걸 다루는 방식이다. 사랑 받을 가치가 있다는 느낌이 부족하면 누군가 내 취약성을 알아차릴까봐 전전긍긍하게 되고 남이 지적하지 않아도 스스로 부족감에 시달린다. 
그런 면에서 부모가 아이들에게 ‘정말 완벽해!’ 라고 감탄하지 말라고 한다. 그 대신 ‘너는 어떤 면에선 완벽하지 않지. 그래서 힘든 거야.. 하지만 너는 사랑 받는 사람이고, 우리에겐 네가 꼭 있어야 돼..’ 라는 말이 필요하다.
오래 전에 「존 카밧진의 처음 만나는 마음 챙김 명상」을 읽었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판단하지 말고 바라보라고 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신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자기를 쥐어 박고 비난하는 사람이 타인을 어떻게 대하겠는가?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에게 자비심을 갖기 어렵다. 그리고 자비심이야말로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의 기본이다.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느끼는 것과 자랑스럽고 기쁘게 느끼는 감정은 정반대인 것 같지만, 감정을 선택적으로 활성화시키긴 어렵다고 한다. 즉 취약성을 계속 외면하면서 아닌 척하다보면 감정적으로 둔감해져서 순수한 기쁨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감정의 원천은 같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남들 앞에서 가면을 쓰다 보면 정말 자기가 느끼는 감정이 무언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취약한 면을 인정하고 드러내는 건 편안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 일도 아니다. 

앞의 그 커플도 그랬다. 남자친구의 하소연에도 그녀는 그게 뭐가 힘드냐고, 이해가 잘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듣다 보니 그녀가 가여운 느낌이 들었다. 자꾸 얼굴이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남자친구는 말했다. ‘턱을 친다’는 끔찍한 표현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면서 성형수술하고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고 나타났더라는 말과 함께. 스스로의 부족감에 시달리면서 자신을 도구 취급하는 그녀의 고단한 내면이 느껴져서 가여웠던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는 자신을 대하듯이 똑같이 함부로 남자친구를 대하고 있는 그 패턴을 그녀는 언제 인식하고 벗어나게 될까? 모든 면에서 잘난 것, 예쁜 것을 지나치게 추앙하는 분위기에서는 결핍감도 더 커지기 쉽다. 그만큼 취약한 면을 그대로 수용하는 용기가 더 중요해진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helenko@kookmin.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