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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올 한 해는 우리에게 어떤 해로 기억될까? 본래 시간은 시작과 끝이 없이 흘러가는 것이지만, 하루, 한 달, 일 년 같은 단위를 정하면 시작과 끝이 생겨나고 의미가 부여된다. 생일이나 결혼 기념일, 환갑 등을 챙기는 것도 하나의 매듭을 짓고 새로 나아가라는 뜻이 아닐까.
은혼식 얼마 전 우리 부부는 결혼 25주년을 맞았다. 은혼식이라고 하는데.. 기념으로 남편과 아들이랑 오붓하게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했다. 농담 삼아 결혼 25년을 총결산해보자고 하면서 되돌아보는 얘기를 나누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결혼의 가장 큰 결실은 두 아들이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청년으로 자라 백지로 놓였던 자기 앞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아들이 옆에서 거든다. ‘집도 생긴 거 아니에요?’ 그렇지! 신혼 살림은 전세 집에서 시작했는데, 우리 집이 생겼다. 차도 소형차에서 중형차로 바뀌었다. 또 뭐가 있을까? 저축이 좀 늘었나? 하긴 물질적인 것만 따질 게 아니다. 25년간 함께 살면서 서로에 대한 인내심이 늘었을 테고 덕분에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이건 질적 성과! 하하… 결혼 덕에 인간관계도 풍부해졌고 삶의 무대에서 맡은 역할도 늘어났다. 아, 실은 이렇게 훈훈하게 성과를 꼽아보는 건 역설적으로 결혼생활 25년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쉽지 않기에 사람들은 오래 산 커플들에게 은혼식이니 금혼식 같은 거창한 타이틀을 붙이나 보다.
내면의 스코어카드 결혼이든 한 해든 결국 스스로의 평가가 중요하다. 6억원이란 거액을 내고 워린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했던 가이 스파이어란 사람이 있다. 그는 옥스포드대와 하버드대학원을 졸업한 엘리트로 월 스트리트의 탐욕 속에서 추락했던 인물인데, 그 점심식사가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았다고 말한다. 그가 버핏에게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외면적 평가(Outer Scorecard)가 아닌 내면적 평가(Inner Scorecard)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자신이 얼마나 외면적 평가에 매달려 왔는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똑똑하고 유능하다고 칭찬 받고 최고의 펀드 매니저로 평가 받는 게 삶의 목적이었고, 남들이 실패자로 볼까 두려워하고, 남의 성공을 시기하고 자기 성공은 과시하고 싶은 마음에 휘둘리며 인생을 허비했다는 걸 말이다. 그가 보기에 버핏은 내면적 평가에 따라 가치투자자로 성공한 인물이었다. 가식도 없고 억지로 하는 일도 없었다. 회사 규모와 수익성을 더 키우기 위해 직원 해고나 수익성 낮은 자회사 매각을 하지 않는 것도, 본사를 버뮤다에 이전하여 세금을 회피 절감하라는 주주들의 권유를 듣지 않은 것도 내면의 평가를 따랐기 때문이다. 그가 쓴 <워린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통해 버핏이 강한 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이 확고하기 때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자신에게 잘 맞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남들이 거품에 휩쓸릴 때도 흔들리지 않고 가치투자를 고수하고, 실적이 뒤쳐질 때에도 두려움에 빠지지 않았던 것은 내면의 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남들의 인정이 아니라 내면의 평가에 따른 스스로의 인정이다. 누군가에겐 좋았고 누군가에겐 힘들었을 올 한 해를 매듭지으며 우리 내면의 스코어카드로 스스로를 평가해볼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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