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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oaching Letter From CMI
 
   
 
 년간 알고 지내던 중견기업 회장과 네 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 오전 11시에 만나 중간에 점심까지 먹으면서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 전부터 알긴 했지만 이렇게 깊은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다. 최고경영자 과정에서 만났기 때문에 매번 단체로만 만났고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눈 적은 없던 사람이다. 우선, 본인 얘기를 털어놓았다. 한 마디로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고 시험 운도 지지리 없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시험도 떨어져 2차로 들어갔고, 고등학교도 그랬고, 대학까지 2차로 들어가 간신히 졸업했다는 것이다. 반면 동생들은 공부를 잘해 어린 시절은 자신은 늘 집안의 골칫거리였단다. 물론 지금은 집안의 기둥으로 변신했다. 근데 시험에 떨어져 좌절해 있을 때마다 말(馬)이 눈에 들어왔단다. 그래서 말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중국 사람들은 말이 재물을 불러들인다고 믿고 있어 놀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돈을 벌게 되었는지, 가족 이야기 등을 줄줄이 얘기했다. 맨 마지막으로 사업관련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 회사를 나오면서 난 그 회장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냥 돈이 조금 많은 평범한 아저씨였다. 남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 흔한 아저씨였다. 하지만 이후에는 생각이 달라졌다. 애정이 생기고 관심이 갔다. 비로소 내가 한 사람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내가 누군가를 안다고 할 때 그것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을까? 혹시 모르면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한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는 것에는 종류가 있는 것 같다. 

우선, 얼굴만 아는 것이다. 얼굴을 알고 대충 몇 마디 오며 가며 나눈 사이가 여기에 해당한다. 대부분 관계가 이렇게 않을까? 얼굴만 아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얼굴만 아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몇 개씩 단체모임을 갖고 있다. 나도 그렇다. 수십 명이 주기적으로 같이 만난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아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얼굴만 아는 사이일 경우가 많다. 아는 것과 얼굴만 아는 것은 다르다.

둘째, 밥을 먹어본 사이이다. 밥을 먹으면 확 사이가 좁아진다. 난 사람을 구분할 때 밥을 먹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한다. 주기적으로 먹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도 나눈다. 한 번이라도 밥을 먹은 사람과는 느낌이 다르다. 사람들은 아무하고나 밥을 먹지 않는다. 가능한 호감을 가진 사람들과 밥을 먹으려 한다. 당연히 밥을 먹으면서 호감을 더 갖게 된다. 밥을 먹으면 친해진다. 

셋째, 밥을 먹으면서 깊은 속내를 털어놓은 사이이다. 위의 회장 사례가 그렇다. 밥을 먹어도 의례적인 얘기만 나누면 친해지지 않는다. 서로의 속내를 털어놓아야 친해진다. 그런 면에서는 대화가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대화의 정의는 남의 얘기가 아닌 너와 나의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대화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화에는 너와 나의 얘기가 빠져 있다. 대신 제 3자의 얘기를 하거나 대통령 얘기 등을 한다. 

마지막 단계는 같이 일을 해보는 것이다. 이게 결정적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같이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해보면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밖에서 보는 그 사람과 실제 같이 일을 하면서 보는 그 사람은 완전히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일을 하면서도 그 사람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고수이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다. 

지혜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해 봐야 한다. 확신을 조심해야 한다. 그 중 하나가 사람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모 교수는 강의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아는지, 얼마나 유명하고 높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니는지를 힘주어 강조한다. 대한민국에서 그 사람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난 그 사람 얘기를 들을 때마다 “착각은 자유”란 말이 연상된다. 난 누구누구를 많이 안다고 떠들고 다니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드러내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난 많은 사람을 알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 난 한 사람을 알더라도 진정으로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싶다. 그게 나의 작은 소망이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