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내가 더 멀리 보았다면 그건 내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서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이 한 말로 알려진 이 문장은 우리가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실은 다른 사람들의 공적 덕분에 가능했음을 깨우쳐준다. 대가의 겸손함을 보여주는 이 멋진 표현을 나도 좋아한다. 1676년 뉴턴은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 글을 썼는데, 과학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은 이 문장의 근원을 추적해서, 뉴턴이 처음 쓴 표현은 아님을 밝혀냈다. 뉴턴은 1651년 조지 허버트가 쓴 문장에서 빌려왔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는 거인보다 더 멀리 본다." 허버트는 1621년 로버트 버튼의 글에서 따왔고, 버튼은 디에고 데 에스텔라에게 빌려왔는데, 그는 또 1159년 존 솔즈베리의 글을 인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는 난쟁이와 같아서 거인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멀리 볼 수 있지만 이는 우리 시력이 좋거나 신체가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거인의 거대한 몸집이 우리를 들어 높은 위치에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솔즈베리가 원조일까? 아니다. 솔즈베리는 1130년 베르나르 사르트르가 쓴 글에서 따왔다고 한다. "우리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들과 같기 때문에 고대인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멀리 볼 수 있다." 뉴턴보다 5백년 전에 쓰여진 글이었다는 거다. 정말, 거인의 어깨 위에 탄 난장이라는 게 실감나지 않는가.
공적 인정 바라기 이 스토리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뭔가를 만들면 내 것으로 꼭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많다. 내가 한 말, 내 강의안, 내 글의 표현, 심지어 농담도 ‘내가 창작한 것’임을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툭하면 저작권 주장이다.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순수한 기여가 몇 퍼센트나 될까? 나보다 먼저 고민하고 뭔가를 만든 선배들, 업계의 동료들, 다른 전문가들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고 힌트를 받아 생겨난 게 아니던가? 성찰해 볼 일이다. 물론 약간의 기여도 나름대로 인정해줄 일이긴 하다. 하지만 지나치게 공적 인정받는 걸 추구하다보면 거꾸로 일에 몰입할 수 없다. 인정이 주어지지 않으면 일할 동기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마치 칭찬 받기 위해서 휴지를 줍다보면 아무도 보지 않는 데서는 휴지 주울 이유가 없어지는 것과 같이. 인정에 대한 의존은 우리가 가졌던 본래의 선의와 목적의식을 갉아먹기도 한다.
창조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끈질긴 노동 아이디어를 누가 채갈까 봐 말하지 않는 사람들도 봤다. 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건 없다. 이를 정교화하고 실행 가능하게 만드는 노동이 없이 아이디어 자체로는 가치 있는 창조가 되기 어렵다.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처음 생각해낸 것도, 처음으로 비행기를 만든 것도 아니었다. 오하이오주의 자전거상점에서 일했던 이들은 자전거 탈 때 핵심이 균형인 것처럼, 비행기의 본질이 띄우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균형 잡기라고 보았다. 그들은 새들이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를 연구하고 기계적으로 실현하면서 무려 300여개의 제작과 5천번에 이르는 실험을 한 끝에 마침내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라이트 형제는 하늘로 날아간 것이 아니라, 한걸음씩 하늘로 걸어간 겁니다.” [창조의 발견] 저자 케빈 에쉬톤의 말이다. 뭔가 가치 있는 걸 만들어내려고 한다면, ‘내가 한 것’이라고 내세우는 유치한 마음을 내려놓고,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는 끈기를 가질 일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