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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oaching Letter From CMI
 
   
는 기업강연이 직업이다.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다. 똑같은 강의도 대상에 따라 반응이 천양지차이다. 뭔가를 갈구하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많이 다르다. 자기가 신청하고 돈을 내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 한 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맨 앞에 앉아 열심히 듣는다. 당연히 나도 신이 나고 하나라도 더 얘기하려고 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가라고 등을 떠밀려 온 사람은 다르다. 난 이런 사람을 인질이라고 부른다. 인질들은 대부분 눈이 풀려 있다. 아무 호기심도 니즈도 없고 풀려날 날만을 기다린다. 이런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배움은 자신이 뭔가 갈증이 있어야 가능하다. 배움에 대한 니즈가 없는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은 목이 마르지 않는 사람에게 물을 먹이는 것과 같다.

가르친다는 것의 정의는 무엇일까? 가르친다는 “가장 자리를 친다”는 의미이다. 선생이 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변죽을 울려 학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란 말이다. 사람을 가르칠 때는 가르치지 않는 듯 가르쳐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교육을 할 때 최대의 수혜자는 바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가르치는 나 자신이 가장 많이 배우고 깨닫는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의미를 절절이 절감한다. 가르침과 배움은 서로 도움을 주며 길러준다는 의미이다. 배워야 부족함을 알게 되고 가르쳐 보아야 곤란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배움과 가르침은 서로를 자극하여 길러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배우는 최선의 방법은 가르쳐보는 것이다. 무학 무식한 집안에서 태어나 박사학위까지 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김 박사는 그 공을 할아버지에게 돌린다. 자기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할아버지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그 날 그 날 할아버지에게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한다. 못 배운 것이 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수업시간에 열심히 선생님 말씀을 듣겠는가?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빨리 배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비슷한 말로 “들으면 잊어버린다. 보면 기억한다. 실행을 하면 이해할 수 있다. 가르쳐 보면 그 지식은 당신 것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동일한 의미이다. 배운다의 히브리 말은 라마드인데 이것은 가르친다는 말과 같다. 결국 배우려고 하는 자는 계속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다 보면 배울 수 밖에 없다. 가르치려면 뭔가 꺼리가 있어야 하는데 밑천이 달랑달랑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책을 별로 읽지 않았던 내가 요즘은 일년에 200권이 넘는 책을 읽는다. 각종 강연도 쫓아다니고, 리더십 관련 테이프도 구해 차에서 듣는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친구와 얘기하다가도 재미있는 말이나 사례는 반드시 메모를 한다. 지식의 레퍼런스를 두껍게 하기 위해서이다. 방전된 배터리로 시동을 걸 수는 없다. 자기 안이 비어있는데 지식을 전달할 수는 없다. 최선의 가르침은 말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사람은 늘 자신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어야 한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다만 잊고 있었을 뿐이다. 배움이란 알고 있던 것을 새롭게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또 그것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가르침이다. 가르침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삶 자체가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 난 그게 가장 두렵다.
* 칼럼에 대한 회신은kthan@assist.ac.kr로 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