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5년 율리우스 카에사르는 현재 독일의 코블렌츠 부근의 라인강 서안에 진을 치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는 로마의 간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와 있던 갈리아 (라인강 서안과 스페인 사이의 지역)의 여러 부족을 평정 중이었다. 그런데 라인강 동안에 거주하고있던 게르만족이 수시로 강을 건너서 갈리아의 부족들에 대한 약탈을 자행했고 공격받은 갈리아 부족들은 좀더 안전한 곳으로 이주를 원하여 갈리아 부족간에 갈등이 계속되고 있었다. 카에사르의 입장에서 갈리아 부족을 로마의 통치에 두려면 안전을 보장해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게르만족에 대한 응징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게르만족에게 로마군단이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라인강을 건너서 그들을 응징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를 원했다. 배를 타고 보병만이 강을 건너는 것으로는 게르만족에게 큰 충격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제대로 된 다리를 건설하여 군단 전체와 장비를 도강시켜 게르만족에게 라인강 동부가 더이상 안전지역이 아님을 증명하기를 원했다. 그는 휘하 장군들에게 다리를 건설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장군들은 대경실색하여 맹렬한 반대를 하였으나 카에사르는 결심을 굽히지 않는다. 카에사르와 부하 장군들은 영문을 모르는 게르만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10일 만에다리를 완성하고 강을 건너 인근 게르만족에게 로마군단에 대한 뿌리깊은 공포심의 씨를 뿌리고 개선한다.
통일 전 독일 수도였던 본 부근의 코블렌츠는 오늘날 라인강 유람선의 근거지로 활기있는 관광지가 되었는데 이곳에서 라인강을 보면 “강폭이 적어도 2 ~ 300미터는 될 것 같은데, 이렇게 물살이 빠르고 깊은 지역에 어떻게 맨손으로 다리를 놓을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10일 만에다리를 완성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지게 된다.
카에사르가 다리를 건설한 또 다른 이유는 부하들의 명예와 자부심이었다. 부근에서 배를 조달하여 전투원들을 도강시켜 게르만족을 정벌할 수도 있었지만, 앞으로 긴 전쟁이 계속될 것을 예상한 그는 상식적인 리더십과 관리방법으로는 효과적인 군단의 통솔이 어려울 것이고,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다리의 건설이 부하들에게 명예와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오랜 세월 기계제조업에서 종사하여 안정지향적인 패러다임을 가진 필자가 보기에 그는 무모할 정도로 부하에게 권한위임을 한다. 중요한 전투에 젊은 지휘관에게 전권을 위임하거나 동계 휴전기간 중 적의 영향권 내에 수비대를 주둔시켜, 때로는 그들이 패하거나 적군에 포위되어서 전멸당하는 재앙을 겪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작전은 성공하고 이 과정에서 휘하 장군들은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몇 년간 계속된 전쟁에 지친 일반사병들이 고향에 돌아가거나 더 좋은 보상을 원하여 지휘관에게 반기를 들고 명령에 불복종하는 위기상황에도 그는 처벌이나 물질적인 보상의 약속보다는 부하들이 가지고 있는 명예와 자부심에 호소하여 그들의 협조와 충성을 이끌어 냈다. 그 결과 일반사병들도 카에사르와 함께 싸웠다는 사실을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다.
카에사르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전략가 중의 한 사람이다. 알렉산더나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이 주로 자신의 천재성에의존해서 목표를 달성했다면 그의 리더십의 특징은 어려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구성원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고, 자부심을 야기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그도 정치적인 계산을 잘못하여 몇년 후 원로원에서 암살을 당하기는 하지만 카에사르의 전기를 읽으면서 인간의 지성은 지난 2000년 동안 별로 발전한 것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