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기만의 상자 밖으로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법한 스토리이다. 한밤 중에 어린 아기가 깨어 우는 소리를 듣고 먼저 아빠가 깨어 났다. 처음에 그는 일어나서 아기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가 깨기 전에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배반하고 그냥 누워 있는다. 이제 아기가 좀더 울고 아내가 자는 동안, 그의 생각은 점차 변질되기
시작한다. ‘나는 직장에서 하루 종일 일하다 왔으니, 힘들다.’는 생각이 강화되면서, 자신을 부지런하면서도 불쌍한 희생자로 여기게
되는 한편, 아내는 ‘둔한 사람’ ‘게으른 사람’을 거쳐 ‘이기적인
아내, 형편 없는 엄마’로까지 비난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난다.
만약에 그 사람이
처음 생각을 배반하지 않고 일어나 아기를 돌봤다면 어땠을까? 아내를 그렇게까지 비난할 필요가 없었고, 아기를 잘 돌본 스스로를 인정하고 끝낼 수 있었다.
아빈저연구소의
책 “리더십과 자기 기만”은 이런 자기 배반이 일으키는 결과를
세밀하게 보여준다. 즉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배반하면 자기 기만의 상자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대단한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상자 안에서는 다른 이의
결점을 부풀리며 비난하고 자신의 장점을 더 크게 여기며 정당화한다.
이런 일은 너무나
빠르게,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스스로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볼까? 장거리 버스를 탔다고 생각해보자. 버스는 만원인데 힘들어 보이는 노인이 버스에 올라서, 앉을 자리를
찾더니 내 앞에 선다. 그럴 때 우리는 ‘’왜 하필 이런
붐비는 시간에, 앉을 자리도 없는 버스에 올라타나?”면서
은근히 노인을 비난하기 시작한다. 노인을 우리와 같은 욕구와 사정을 지닌 똑 같은 인간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내 자리를 빼앗을 존재로 보고, 그것에 맞서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기만적
생각의 기원이 자기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 어떤 것을 하지 않으면서, 즉 배반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 배반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는 그럴 듯한 스토리가 필요하고, 기만적인
스토리는 거기에서 탄생한다.
한 번은 <결정적 순간의 대화> 교육 중에 내가 이런 사례를 들어
교육생들의 반응을 물어봤다. ‘당신이 엘리베이터에 막 타서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저만치서 어떤
사람이 꽤 큰 짐을 들고 이쪽을 향해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내며 급하게 걸음을 재촉한다. 눈이 마주치지
않았지만 당신은 상황을 분명히 알아차렸다. 당신은 순간 망설이다가 그냥 닫힘 버튼을 누르고 만다. 그런 다음 어떤 자기 합리화 스토리를 만들어내겠는가?’ 라고.
교육생들은 다양한
대답을 내놓았다. “급한 회의시간에 늦을까봐.” “저 사람보다
나는 매우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짐은 보기보다 무겁지 않은 것이었다.” 심지어 “나는 올라가는데, 그는
지하로 내려가려고 했을 것이다.”라는 기상천외한 답변까지 나온다. 이게
자기 합리화 스토리다.
아빈저의 저작에서는
이런 자기 기만의 상태를 ‘상자 안’에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혹시 ‘상자
안’에 머물고 있지 않은가 살펴보고, 얼른 상자 밖으로 나오라고
촉구한다.
자녀의 문제 있는
행동을 맹비난하고 있을 때, 혹시 우리가 부모로서 어떤 상자 안에 머물고 있지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부모로서 바람직한 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면서도
종종 그것을 하지 않으며, 아이의 문제를 부풀림으로써 자기 책임을 피하는 자기 기만의 함정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상사로서도 마찬가지다. 직원이 형편 없이 느껴지고
미워질 때, 생각해보자. “혹시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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